
감사의 달 5월
5월은 흔히 ‘감사의 달’로 표현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부부의 날까지. 유치원 교사로 현장에서 20년 넘게 일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이 문구를 쉽게 사용하게 되었다. 가정으로 보내는 안내문에도 이웃들에게 보내는 카드와 선물에도 “감사의 달 5월을 맞이하여”라는 문구를 넣는다. 이렇다 보니 큰 의미를 담지 않은, 상투적인 표현이 되어버린 듯하다.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로 부르던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성당 주일학교에 나가고 성가대에서 노래 부르며 행복해했던 시간이 생각났다. 그때 나를 성당에 열심히 다니게 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아닌 예쁜 성가대 선생님과 빨간 성가대 망토였다. 여자아이들이 가장 많이 꿈꾸던 장래 희망이 선생님과 간호사이던 나의 어린 시절, 피아노도 잘 치고 하얀 얼굴도 너무 예뻤던 성가대 선생님은 나에게 막연히 교사의 꿈을 가지게 해 주셨던 분이다. 그때가 떠오를 때마다 가끔 ‘나도 누군가에게 이 길을 따라 걷고 싶게 만드는,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교사일까?’ 생각하곤 한다. 유치원 때 선생님은 기억도 잘 안 난다는 이들의 말을 들을 때면 특히나 더.

얼마 전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사에 인턴사원이 들어왔는데 이름이 ○○○라고, 혹시 아느냐고 물어왔다. 금방 기억이 나는 이름이었다.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웃는 얼굴이 깜찍하고 귀여웠던, 4년 차 유치원 교사 시절 우리 반 아이. 그 아이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깜짝 놀랄 대답이 돌아왔다. 회사에 출근한 인턴사원 가운데 한 명이라고 했다. 우연히 유치원 시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자신이 ○○성당 유치원에 다녔다고 말하길래, 아는 동생이 그 유치원 교사였다고 말하며 내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어!! 나 일곱 살 때 우리 지혜반 선생님이다. 나 다섯 살 백합반 때도 선생님 반이었는데!”라고 말했단다. 그 친구도, 사진을 보여준 지인도, 나도 놀랐다.
문득 그때가 생각났다. 학창 시절을 보내고 원하던 유치원 교사가 되었지만, 교사라는 직업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임을 발견하기 시작했던 3~4년 차 교사 시절! 교사로서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마치 엄마처럼 돌봐주고 챙겨줘야 하는 것들이 더 많은 어린아이들, 이것저것 참견하고 잔소리하는 선배 교사들, 받는 대우에 비해 요구사항이 많은 원장, 아이들이 집에 전달하는 한마디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엄마들... 가끔 옷에 실수하는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면서 ‘내가 원했던 교사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 내가 지금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걸까?’ 하며, 교사로서 회의가 들기 시작했던 때다. 처음 교사를 시작한 1996년 당시는 사립 유치원 교사는 특히나 대우가 좋았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고등학교 교사들처럼 존경받거나 교사로서 권위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회의가 더 크게 밀려오던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 고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20년이 넘는 시간을 유치원 교사로 지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주말에 선생님 보고 싶어서 유치원 가고 싶었다는 아이,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가보니 유치원 다닐 때가 훨씬 더 재미있었다고 가끔 유치원에 찾아와 들어가도 되냐며 현관을 기웃거리는 아이, 퇴근길 만난 학부모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감사하다며 전하는 인사, 이런 것들이 나의 교사 생활에 힘이 되어 준 덕분일까? 20년 넘는 세월을 잘 버텨내고 나니, 이제는 말 안 듣고 선생 우습게 아는 머리 큰 녀석들보다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고, 선생님이 최고인 줄 아는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하는 내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요즘 심심치 않게 사건·사고 뉴스에서 접하는 교권 추락에 관한 이야기, 아이들을 학대하는 유아교육 기관 교사들의 이야기는 현장에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며 열심히 일하는 교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기운 빠지게 한다. 더불어 그런 사고들이 생길 때 ‘혹시나...’ 하는 의미가 담긴 학부모들의 시선이나 말들도.
이제는 교실 수업이 아닌 행정 실무를 오래 하다 보니 후배 교사들을 보며 문득 내가 교사로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그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참 사건 사고 많고 학부모들도 까다롭고 쉽지 않지? 나 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요구하는 것도 많고 참 힘든 때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요즘 현실이나 주변 상황, 학부모님들이 그런 거지 아이들이랑 생활하는 거는 똑같아요! 아이들은 안 그렇잖아요.” 그렇다. 아이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선생님은 뭐든지 다 아는 사람인 줄 알고, 선생님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그저 즐겁다고 여긴다. ‘내가 그걸 잊고 있었구나.’

지금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 나에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해주신 성당 주일학교 선생님, 유치원 선생님이었던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나의 아이들, 아이들은 항상 똑같다는 후배 교사... 서로의 발자국들이 이어져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5월이다. 5월은 ‘감사의 달’이 맞다.
김윤경 릿다 | 중림동 약현성당 부설 가명유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