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알았지?
“학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알았지?”
“네!”
초등학교 다닐 때 부모님께 거의 매일 듣다시피 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교과목은 도덕, 국어, 사회, 산수, 자연, 체육, 음악, 미술, 실과입니다.
중학생이 되어도 학교에 갈 때마다 듣는 이야기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가 배운 교과목은 국어, 도덕, 사회, 국사,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공업, 체육, 음악, 미술, 영어입니다. 가사도 배웠던 것 같은 데 잘 생각이 안 나네요.
고등학교에 진학해도 어김없이 듣는 말이었습니다. 국민윤리, 국어, 국사, 한국지리, 수학Ⅰ&Ⅱ,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체육, 교련, 음악, 미술, 한문, 영어, 독일어, 공업이 고등학교 때 배운 교과목입니다. 이쯤 되면 제 나이를 예측하시는 분이 계시겠죠? 그렇습니다. 저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태어났고, 전두환 시절에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녔으며 노태우 때 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것 하나는 자신 있더라고요. 열심히 하는 것! 12년을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거의 매일 듣는 말이니 어느새 머리에 새겨져 있었나 봅니다. 이렇게 저는 12년을 개근하며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했고, 주일에 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면서까지 열심히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열심히 하라고. 이렇게 저는 근로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그것이 부당한지도 모르고 근로를 했지요. 그러면서 신문이나 TV에서 파업하는 사람들 뉴스를 보거나 거리의 현수막을 볼 때면 ‘일이나 열심히들 할 것이지…’라며 못마땅해했죠. 아, 근로(勤勞)는 ‘부지런히 일함’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더군요. 그러니까 근로자는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 ‘열심히 일하는 사람’ 정도 되겠네요.

<출처: 유투브 사이다 '흔한 프랑스 시위 모음'>
“유럽에서는 중학교 때부터 ‘노동’에 대해서 가르친답니다!”
한 강의에서 들은 내용입니다. 정말일까? 우리나라에서는 빨갱이 교육한다고 비난만 받던데. 과거 공산주의 국가였던 동유럽에서 가르친다는 말이 아닐까? 이런저런 궁금증에 찾아봤습니다, 정말인지.
● 프랑스 중학교 4학년 <시민교육> 교과서 : 노조의 역할을 "조합원들의 사회적, 직업적 이익의 옹호 단체"라는 풀이는 물론 "사회 안전 보장과 같은 기관 경영에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어서와, 노동은 처음이지?②] 프랑스·독일·미국의 노동교육 방법, 오마이뉴스, 2013.12.05., 강민수, 최지용
● 독일 교과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모의 노사관계 놀이'다. 이 놀이는 말 그대로 학생들이 노조 간부나 사용자가 돼 임금 협상, 단체 교섭 등을 진행하는 것이다. [어서와, 노동은 처음이지?②] 프랑스·독일·미국의 노동교육 방법, 오마이뉴스, 2013.12.05., 강민수, 최지용
● 영국은 우리나라 중ㆍ고등학교에 해당하는 Key Stage 3, 4에서 (중략)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교육을 시민성 교육의 중요한 구성 부분으로 제시하고 있다. [세계의 노동교육②] 영국…노동조합이 학교 안으로, 헤럴드경제, 2018.09.25., 박도제
이 외에도 더 있습니다. 동유럽이 아니었네요. 프랑스, 독일, 영국이 빨갱이 교육을 시킬 리가 있겠습니까? 말도 안 되죠. 위 기사들은 고용노동연수원 송태수 교수의 ‘선진국 고용노동교육 현황과 함의’라는 보고서와, 한국노동교육원이 2003년에 펴낸 ‘선진5개국 학교노동교육 실태’와 2010년에 나온 ‘프랑스 경제사회 통합교과서-한국어판’ 등을 기반으로 작성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출처: 영화 '빌리 엘리어트'>
‘빌리 엘리어트’라는 영화 보신 적 있으신가요? 영국 북부 탄광촌에 사는 11살 소년 빌리가 발레리노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죠. 이 영화에서 빌리가 광부인 아버지와 함께 왕립 발레학교 오디션을 보고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오디션이 끝나고 나가려는 순간 교장 선생님이 파업 중이던 빌리의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죠. “파업에서 꼭 승리하십시오(Mr. Elliot. Good luck with the strike).” 이 대사가 우리나라에서 공연한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에도 있는지 모르겠네요.
프랑스 고등학생이 노동법 관련 시위에 참여하는 이유가 자신도 곧 사회에 나갈 것이기 때문이라는 인터뷰도, 독일의 대중교통 파업에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불편하지만, 노동자들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말도, 영국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파업에서 성공하라’는 대사도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위 기사를 읽다 보니, 이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 이들은 중학교 때부터 노동자의 권리와 책임을 배우고 실습하며 “노동자”로 키워졌구나!’
노동자라는 말은 ‘법 형식상으로는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맺으며 경제적으로는 생산수단을 일절 가지는 일 없이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대등한 입장이기에 ‘근로조합’이 아니라 ‘노동조합’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하고요.

<출처: 청년민주노총>
이 글의 맨 앞에 줄줄이 나열했던 교과목 중에서 저는 노동이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노동자의 권리는 어떤지, 노동자의 책임은 무엇인지, 노동자의 연대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개발 독재 시대에 ‘지시대로 근면하게 일하는 근로자’가 필요했던 사람들이 집권했던 시절에 태어났고, 그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집권하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고 그들의 의도대로 키워졌습니다.
근면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 문제인가요? 아니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근면하게 열심히‘만’ 일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전 어느 광고 문구처럼 열심히 일한 나는, 권리를 누렸어야 합니다. 연장근로수당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퇴근해서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연차휴가를 가려면 눈치 보며 미안해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나는 열심히 일했고, 그렇기에 연장근로수당은 당연히 받을 내 권리이며, 퇴근 이후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도 내 권리이고, 연차휴가를 가는 것도 법에서 명시한 내 권리인데 말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지시대로 근면하게‘만’ 일하는 근로자만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도 독재 개발 시대처럼 개발을 위한 산업역군이 필요해서 그런 건가요? 경제력 세계 10위권의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산업역군이, 지시대로 근면하게‘만’ 일하는 근로자만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출처: 유투브 서울특별시교육청>
요즘은 학교에서 노동과 관련한 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알아봤더니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2년 동안 2시간에서 최대 5시간이라고 합니다. 이 짧은 시간에 우리 아이들이 노동 인권에 대해 유럽의 학생들처럼 얼마나 잘 배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지시대로 근면하게‘만’ 일하는 사람으로 키워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은 힘들고 어렵고 껄끄러울 수 있겠지만 우리가 책임을 다하고 우리의 권리를 당당하게 누려야,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자신의 권리를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이런 깨달음 이후로 강의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근로자가 될지 노동자가 될지는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뭐가 좋고 나쁘다고 저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노동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보시면 좋을 영상과 기사 주소를 적어봅니다. 출퇴근하실 때 편하게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손창배 노무사
노동사목위원회 상임위원 • 함께하는 노무법인 부대표
유튜브 [사이다] 흔한 프랑스 시위 모음 (French protests)
https://www.youtube.com/watch?v=ptmbWUdDZdk
지식채널e [당신은 누구입니까. 우리를 부르는 두 개의 이름]
https://jisike.ebs.co.kr/jisike/vodReplayView?siteCd=JE&prodId=352&courseId=BP0PAPB0000000009&stepId=01BP0PAPB0000000009&lectId=10878557
저널리즘 토크쇼J [49회] 거의 무편집본 ② : 언론이 노조에 대한 편견을 만드는 3가지 방법
https://www.youtube.com/watch?v=iTB2_ZwyIfg
헤럴드경제
[세계의 노동교육①] 한국…노동3권 빠진 반쪽짜리 교육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80925000050&ACE_SEARCH=1
[세계의 노동교육②] 영국…노동조합이 학교 안으로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80925000051&ACE_SEARCH=1
[세계의 노동교육③] 독일…학교에서 모의 노사교섭 실시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80925000052&ACE_SEARCH=1
[세계의 노동교육④] 스웨덴…노동자교육협회(ABF) 통한 평생교육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80925000054&ACE_SEARCH=1
오마이뉴스 [학교에서 '노조 문건' 만드는 법도 가르치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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