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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산재 유가족이 외롭지 않도록, 그들의 “곁으로”
    • 등록일 2022-05-24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89
  • 산재 유가족이 외롭지 않도록, 그들의 “곁으로”

     
    서울대교구 노사위, 산재 유가족 이야기 자리 마련

    “우리 산재 유가족들은 사실 많이 외롭습니다. 저희의 이야기를 이렇게 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요. 감사합니다.”(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이사장)

    “새로 옮긴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내가 아들을 직장 괴롭힘으로 잃었고, 그 때문에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 어렵습니다. 아픈 이야기라고 회피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남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김동준 군의 어머니 강석경 씨)

    산재 사고, 직장 내 괴롭힘, 참담한 노동 현장의 절망감.... 살기 위해 일하던 직장에서 죽음으로 내몰렸던 이들의 가족들이 있다. 가족을 잃고 아들, 아버지, 딸들을 죽음으로 내몬 이유를 깨달은 이들은 다시는, 이런 아픔과 고통을 겪는 이들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언어는 대부분 기자회견이나 간담회, 법정에서의 싸움과 투쟁의 말들이었다. 가족의 죽음을 재차 확인하고,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자신들의 아픔과 고통을 호소하는 말을 위한 자리는 없다. 진실을 밝혀 달라는 당연한 요구조차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지겹다”, “힘들다”는 반응이 돌아오는 상황에서 가족의 힘겨움까지 이야기할 겨를이 없다.

    “가족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혹여 힘들까 봐....”라고 조심스러워하는 말에, “아니오. 사실 우리 가족은 외롭습니다. 이런 자리나마 마련해 줘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산재 유가족들이 자신들의 말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21일 서울 용산구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은혜의 뜰’에서는 산재 유가족의 이야기 자리와 추모 미사가 진행됐다. “산재 유가족 곁으로”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자리는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올해 처음 마련했다.

    서울 노사위는 “그동안 많은 현장에서 연대하면서 유가족들의 치유와 회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누군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며 이유를 밝혔다.

    이날 산재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들은 드라마 제작 현장의 노동 현실을 고발한 이한빛 피디의 어머니 김혜영 씨(사비나), 특성화고 현장실습 중 직장 괴롭힘으로 세상을 떠난 김동준 군의 어머니 강석경 씨, 부산 경동건설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세상을 떠난 정순규 씨의 아들 정석채 씨(비오)다.

    이들은 가족을 잃은 뒤의 삶과 그들의 신앙 그리고 곁에 있어 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힘이 되기 위해 외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5월 21일 서울 은혜의 뜰에서 '산재 유가족 곁으로'가 진행됐다. (사진 제공 =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이한빛 어머니 김혜영 씨
    “왜 한빛이가 죽었는지, 그 이유를 왜냐고 한 번 더 물을 수 있도록”

    “날이 화창해도 비가 와도 슬픕니다. 행복할 수 없고, 행복을 말할 수 없어요. 아들 이한빛 프란치스코는 드라마를 통해서 세상을 옳게 변화시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그런 드라마를 만드는 현장도 행복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정규직 5명에 비정규직과 일용직, 프리랜서가 90여 명인 현장에서 하루 22시간 일하고, 폭언과 폭력, 차별을 견뎌야 하는 상황을 한빛은 그냥 볼 수 없었습니다.”

    tvN에 입사해 드라마 ‘혼술남녀’ 제작 현장의 열악하고 폭력적인 현장을 겪던 이한빛 피디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려는 노력이 배제되고 존중받지 못하면서 모멸감과 절망감으로 드라마 촬영이 끝난 직후 세상을 떠났다.

    이한빛 피디의 유서를 본 가족들은 이 죽음이 개인적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직장인 거대 기업은 그를 직장 부적응자, 불성실한 사람으로 오명을 씌웠지만 온 가족이 그에 맞서 싸웠다. 결국 사과를 받아냈고, 보상금으로는 방송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만들었다.

    김혜영 씨는 “기억한다는 것”에 대해 말했다.

    아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 “네가 이곳에 빛을 몰고 왔다”를 낸 뒤, 여러 자리에서 아들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는 무척 두려웠다. “그 자리에서 한빛의 죽음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빛의 죽음을 인정하고 인식하는 것과 함께 그 죽음의 이유를 묻고, 그 뒤에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는 것, 그래서 그 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것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전부가 아들 한빛을 기억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한 곳이라도 더 가서 그렇게 한빛을 기억하고, 사람들이 왜냐고 질문하게 하고 싶었어요. 한빛은 왜 죽었을까, 세월호는 8년이 지났는데 왜 여전히 이런 상황일까? 왜라고 질문하도록 하는 것이 죽을 때까지 할 일이에요. 아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너무 힘들지만, 왜냐고 질문해 달라고, 그래야 여러분의 가족이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야기 뒤에는 생활성가 가수 황수정 씨의 공연이 이어졌다. (사진 제공 =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지금 관심 없는 이들을 원망하지 않지만, 내 눈물이 다른 세상을 위한 울림이 되기를

    김동준 군. 동아마이스터고 3학년 때 프로그래머라는 꿈을 좆아 CJ에 입사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4년 1월 지속적인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들어 하던 그는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직업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싼 노동력’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 1963년, 2년 일하고 1년 현장실습을 나가도록 하는 제도가 생긴 때는 1993년이다. 이른바 2+1 제도로 실습 현장에서 노동력 착취, 사고를 당하는 현실이 드러난 것은 최소한 1995년이었다.  그 뒤로 제도와 이름이 바뀌었다지만 같은 현실은 여전히 어린 학생들을 사고와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자식이 몇이든 모두 소중하지만, 동준이는 하나뿐이라 제게 각별했던 아이였습니다. 돈이 많지 않아도 함께 밥 먹는 시간이 행복했던 가족이었고, 어릴 때부터 아이와 함께 게임을 했고, 그 덕분에 동준이는 게임을 만드는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마이스터고에 가겠다는 결정 때문에 무척 싸웠고, 일부러 지각도 시켰지만 동준이는 그 3년이 가장 행복했다고 했습니다. 내 소중한 아이가 현장실습에서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존재로 취급되는 줄 떠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동준아 밥 먹자’라는 말을 틀어막으며 차라리 비명을 지르는 시간을 견뎌 왔습니다.”

    강석경 씨는 아이를 떠나보낸 심정을 추스르기도 전 아들 동준이와 같은 죽음을 다시 목격했다. 그는 “어느 날 나 같은 일을 겪는 또 다른 사람이 뉴스에 나왔다. 왜 이럴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믿어지지 않았다”며, “나 역시 우리가 이런 일을 겪을지 몰랐고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한 것에 대해 정말 많이 회개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외치지 않으면 내일 또 누군가 죽을 것이라는 절박함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조차 힘드니까 그냥 우리끼리 살자고 한다. 하지만 오늘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이걸 외칠 수 있는 것도 힘이다"라며, “곁으로라는 이 말이 너무 좋다. 제 곁에 없는 아들을 대신해서 곁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들어와 줬다. 우리의 일은 그래서 소중하다. 우리의 이야기와 눈물이 세상에 울림이 된다면, 우리도, 성직자들, 언론들도 알려줘야 한다”고 요청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질 것

    정석채 씨의 아버지 정순규 씨는 부산 경동건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사했다. 분명 안전장치 미흡이 원인이었고, 이는 건설 현장의 고질적 행태였지만, 사고 원인은 개인의 부주의가 됐다.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스타일리스트였던 아들은 생업을 접고 아버지 사고의 진상규명에 나섰다.

    “진상규명 활동을 하는 저에게 사람들이 정치할 거냐고 묻습니다. 타인은 물론 친인척들에게도 지지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치 섬에 갇혀 있는 것처럼 외롭습니다. 싸우면서 매일 내 자신이 역겨울 정도로 자책했습니다. 내가 그 전의 참사와 사건들에 관심이 있었다면, 다른 사고를 안일하게 보지 않았다면.... 외롭고 힘들어 모두가 저처럼 겪어 봐야 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많이 서운하지만 한편으로는 함께해 줬던 내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신앙생활에 철저했다는 정석채 씨는 “하지만 아버지 죽음 뒤에 하느님을 원망했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다. 감사한 분들이 정말 많았지만 내 안의 분노와 서운함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왜 교회가 더 함께 싸워 주지 않는가 원망했지만, 예수님을 부인할 수는 없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라는 성구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교 신자이기도 하다. 가족의 죽음은 이들의 개인적, 사회적 삶에 큰 충격과 변화를 가져왔다. 이들에게 신앙은 어떤 의미였고, 무엇이 되었을까.

    김혜영 씨는 “그렇게 착한 아이를 왜 죽게 했을까. 한 번은 손잡아 줄 수 있지 않은가라며 하느님을 원망했다. 하느님 앞에 가기 싫었지만 결국 갈 곳은 성당뿐이었고 그곳에서 울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강석경 씨는 자살자에 대한 교회의 태도에 깊이 상처받았다고 말했다. 개신교인인 그는 아들의 장례 때, 입관 예배나 장례 예배를 드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국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강 씨는 “수십 년 다녔던 교회를 버려야 할 만큼 상처받았다. 내가 불행한 일을 겪은 것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라는 책망뿐이었다”며,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부끄럽고,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나는 교회 공동체에서 예수님이 말했던 가장 작은 자였지만 배척당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의 끝으로 산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미사가 봉헌됐다. ©정현진 기자

    자살이라는 죽음의 이유보다 남아 있는 가족 돌보는 것이 우선

    이야기가 끝난 뒤, 산재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 미사가 봉헌됐다.

    미사 주례를 맡은 김시몬 신부(서울대교구 노사위원장)는 교회가 자살자들을 위한 미사를 공식 허락하지 않는 것은 자살이 확산될까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도, “교회는 죽은 이들만이 아니라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돌봐야 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그런 인식이 점차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남은 가족들은 스스로 죄인이라는 생각, 행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갇혀 있지만 그들은 행복해야 한다. 홀로 행복을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하는 자리를 통해 아픔을 이겨낼 수 있다”며, “혼자는 작은 힘이고 모든 것을 할 수 없지만 모두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된다. 목숨을 버린 이들이 왜 그랬는지 그 의미를 알아내고 더 많이 알려야 한다. 작은 힘들이 함께 더 큰 힘을 발휘하면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한편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와 이주사목위원회는 산재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연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10시 봉헌되는 연미사에서는 산재 피해자, 희생자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의 명단을 접수받는다. (미사 문의 : 02-924-2721)

    *2022년 5월 12일 봉헌된 추모미사 안내 바로가기  http://reurl.kr/2021405B5TM
     
    기자명 정현진 기자    입력 2022.05.24 11:4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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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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