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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정의 문헌] 현대의 예언자들
    • 등록일 2022-01-07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303
  • [기업가와 노동자]

    현대의 예언자들

       다시 인간을 경제의 중심에 두자고 누가 요구하겠습니까? 불로 소득의 지배를 누가 비난하겠습니까? 버리는 문화를 누가 규탄하겠습니까?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누가 고발하겠습니까? 정치권과 경제권에 단지 인력 과잉에 따른 인원 감축만으로는 통치도 경영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가 말하겠습니까? 복음의 기쁨에서는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은 모든 경제 정책에 반영되어야 하는 관심사들입니다. 그러나 이따금 이는 참되고 온전한 발전을 위한 전망이나 계획이 없는 그저 정치적인 담론을 그럴듯하게 만들려고 덧붙이는 부록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체계에서는 참으로 많은 말이 거북하게 여겨집니다! 윤리 문제를 제기하는 것, 세계 연대 의식을 촉구하는 것, 재화의 분배를 거론하는 것, 노동의 보호와 힘없는 이들의 존엄성 수호를 주장하는 것, 정의의 투신을 요구하는 신에 대하여 말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거북합니다. 또 어떤 때는, 이 말들이 그 가치를 깎아 내리는 미사여구에 이용되기도 합니다. 이 문제들에 대한 안이한 무관심은 우리의 삶과 말에 담긴 모든 의미를 공허하게 만듭니다.”

       사람들 누구나, 따라서 그리스도인과 모든 믿는 이도 악과 남용을 고발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선과 배려를 가리켜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권위를 거스르더라도 악에서 파생되는 모든 것에 ‘저항’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가 다시 사회생활의 중심이 되도록 “사회 활동에 깊이와 현실성을 더하게” 해 주는 이러한 고발의 역할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깨달을 수만 있다면 오늘날에도 그러한 예언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피아에 맞서 싸우는 기자들, 노숙자들에게 본당 문을 활짝 여는 거리의 신부들, 출세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주저 없이 진리를 말하는 학자들, 이민들이나 장애인들과 일하는 단체들, 더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어머니들 등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흔히 여론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예언자들이 있습니다. 그나마 예언자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도 수 많은 예언자들이 있다는 것만도 다행입니다.

       예언자는 결코 편안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언과 권력 사이에는 해소될 수 없는 갈등이 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언은 권세가들을 ‘회개시키려고’ 하지 않더라도 불의를 고발하고 치부를 드러내며 문제점을 밝히기 마련입니다. 예언자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권력 자체의 본질적인 병폐로서, 명령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치러야 하는 대가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권력을 통제하고 그 남용을 규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바로 예언자들이 이를 비판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뿐입니다. 예언자들은 영적 자유를 지니고 있어서 자신들이 한 고발 때문에 직접적으로 폭력을 당하거나 옥에 갇히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소외되는 대가를 감내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권세가들이나 여론을 향하여 이렇게 외칩니다.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합니다.”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보수를 지불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희망을 짓밟아서는 안 됩니다.”

       권세가들은 본래 악인은 아니어도 국회나 금융계에서뿐만 아니라 일터나 가정을 비롯한 모든 차원에서 직권을 남용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진 자가 특권을 누리려고 자신의 지배적 지위를 악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 세상에 이런 일은 늘 있어 왔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누군가는 권력에 맞서 예언자적 담론을 펼칠 필요가 있습니다. 권력 이론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직권 남용이 자행될 때, 실제로 가난한 이들과 더 힘없는 이들을 해치는 방향으로 권력이 이용될 때, 그 권력을 비판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그러한 남용을 고발하려면 곤란한 일을 당할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권세가들을 비판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위험한 일입니다.

       현대의 권세가들, 규탄받아 마땅한 21세기의 파라오들로는 그 누구보다도 경제 금융계의 큰 손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 전문 경영인이 회심하여 회사의 경영 방식을 바꾸고자 한다면, 곧 버리는 문화를 떨쳐 버리고 경제생활에 대한 더 인간답고 인도주의적인 전망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소유주들은 이에 대응하여 즉시 그를 해고해 버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명령하는 주체는 그 전문 경영인이 아니라, 그보다 더 강하지만 추상적인 권력, 곧 얼굴 없는 금융 자산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전문 경영인은 그 권력으로부터 그저 경영 역할만 위임받은 사람일 뿐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큰 수익을 내는 사행산업이나 살인을 조장하는 군수 산업에서 이러한 현상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거대 금융 자금이 슬롯머신에서 석유로, 광산에서 무기 제조나 마약으로 손쉽게 흘러들어 갑니다. 사실 생산품이 무엇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돈이 돈을, 그것도 더 많은 돈을 낳는다는 사실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자금, 자본, 은행, 다국적 기업은, 기본적으로 오직 한 가지 일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 곧 자신의 불로 소득만 불릴 줄 아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계급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들 금융 투기꾼들은 현직 정치인과 통화하는 것이 그들의 일정으로 잡혀 있어서, 합법적이든 아니든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연락을 취합니다. 오늘날 권력의 추상적인 차원, 그 비인격적 차원은 분명히 모든 사람이 경악할 정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회 정의 – 돈과 권력 P89-93
  • 링크
    http://reurl.kr/2CC11A748Z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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