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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정의 문헌] 경쟁과 능력주의
    • 등록일 2022-04-14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99
  • 경쟁과 능력주의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계의 가치들, 특히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가치들의 위기가 심각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원칙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인간적 차원에 부합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리스도교 인간학에는 더군다나 맞갖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 내부에서 빈번히 이루어지는 경쟁에 대한 강조는 인간학적으로도 경제학적으로도 잘못된 것입니다. 기업은 무엇보다도 협력과 상호 부조와 호혜적 관계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업 경영이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하도록 몰아가는 개별 성과급이라는 냉혹한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면,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거둘 수 있을지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모든 사회 조직의 핵심인 신뢰의 바탕을 약화시키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위기의 첫 번째 신호들이 나타나기가 무섭게 기업은 와해되어 버리고 맙니다. 기업을 지탱해 주는 인간적인 깊은 뿌리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기업내 노동자들 사이의 과도한 경쟁은 심각한 잘못이라고 강력히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과 노동자와 경제 질서의 전체적 선익을 바란다면 과도한 경쟁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실제로는 반(反)가치이지만, 떠오르고 있는 또 다른 가치로 매우 추앙받는 능력주의가 있습니다. 이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풍요로운 표현인 ‘능력 또는 공로’(merito)라는 말을 사용하기에 매혹적입니다. 그러나 이는 ‘능력’이라는 용어를 이념적으로 이용하고 도구화하며 왜곡하고 훼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능력주의(meri-tocrazia)는 불평등과 배척을 윤리적으로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신자본주의는 능력주의를 통하여 이러한 불평등을 도덕적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재능을 선물이 아닌 능력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이익과 불이익을 누적시키는 신자본주의 고유의 시스템이 이러한 전략에서 비롯됩니다. 두 명의 어린이에게. 나면서부터 재능이나 사회적 경제적 기회가 다르게 부여된다면, 경제 분야에서는 그들의 서로 다른 재능을 능력으로 해석하며 보수에 차등을 둘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두 어린이가 나이 들어 은퇴할 무렵에 그들 사이의 불평등은 몇 곱절로 불어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안식년과 희년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빛을 탕감해 주고 땅을 쉬게 하며 가족의 상속 재산을 되찾을 수 있게 해 주었던 시대와 우리는 너무나도 멀어져 있습니다. 

       능력주의가 낳은 또 다른 결과는 가난한 이들을 무능력자, 심지어 죄인으로 취급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국가가 가난의 책임을 가난한 이들의 탓으로 돌린다면,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잘 살펴보면, 이것이 욥의 친구들의 고리타분한 논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친구들은 욥의 불행을 욥의 탓이라고 설득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복음의 논리, 인간 삶의 논리가 아닙니다. 복음서의 방랑한 아들의 비유에서, 특히 자기가 상속받은 몫을 다 허비하고 집으로 돌아온 동생을 업신여기고 동생은 파산한 자로 남아도 마땅하다고 여기는 큰아들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능력주의를 발견하게 됩니다. 반면에 능력주의를 바라지 않는 아버지는 어떤 아들도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나 도토리를 먹는 것이 온당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각자가 겪어 온 삶의 역사가 어떠하든, 이 아들들의 존엄은 언제나 동등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회 정의 – 돈과 권력 p125-127

    미켈레 찬추키 편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전문보기 https://cbck.or.kr/Documents/Read?category=K5280&oid=20190241&gb=title&search=%EB%8F%88%EA%B3%BC%20%EA%B6%8C%EB%A0%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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