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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의 눈으로 노동 보기
    • 등록일 2015-10-13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3480
  • 신앙의 눈으로 노동 보기

    정수용 신부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1. 일상에서 바라보는 노동


    - 졸업하는 대학생들에게 던진 질문 : 학생이 아닌 졸업 이후 무엇이라 불리길 원하는가?

    - 노동하면 떠오르는 것은?

    - 노동자는 누구인가?

    - 왜 노동을 해야 하는가? 노동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노동에는 다양한 개념들이 혼재해 있습니다. 노동은 단순히 경제적 이해관계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사회 신분적 요소, 법과 사회규칙, 윤리와 도덕 등 다양한 개념과 깊은 연관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우리는 노동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제적 보상만이 아닌, 종합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노동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2. 성경에 나타난 노동에 대한 가르침


    2.1. 구약성경


    성서가 인간의 노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인근 문화와 구별되는 고유의 가치관은, 인간의 일과 활동을 모두 하느님과의 관련 안에서 본다는 것 입니다. 먼저 창세기는 성경 전반에 지속되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잘 나타내주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교회가 간직한 노동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 등장하는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6일에 걸쳐 세상을 창조하셨고, 일곱째 되는 날 쉬셨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휴식은 반대로 하느님의 창조, 즉 노동을 강조합니다. 고대 다양한 종교에 등장하는 신의 개념에서 신이 직접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신은 인간과 달리 노동을 하지 않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구약 성경은 인간의 노동이 바로 하느님의 창조에서 왔음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된 인간은 노동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6-28절에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인간이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말은 인간 노동의 심오한 본질을 드러냅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창조주의 활동에 참여하며, 발전시키고, 완성하는 존재로 불리움 받은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지배’는 군림이 아니라 ‘일구고 돌보는’(창세 2. 15)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같은 창세기의 몇몇 구절을 예로 들며 노동은 죄의 결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3장 이하에 나오는 원죄와 연관된 서술입니다. 이들은 3장 17절을 예로 듭니다.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너는...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일부의 사람들은 이 구절이 인간 노동을 죄의 결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성서 해석은 ‘노동’과 ‘노동에 따른 고통’을 구분하여 해석합니다. 즉, 노동은 인간의 본래 상태에 속하는 것이며, 인간이 타락하기 전부터 있었으므로 형벌이나 저주가 아니란 것입니다. 노동은 하느님과 신뢰와 일치의 관계를 깬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고생스럽고 힘든 것이 된 것일 뿐, 본래 창조주의 계획에서 피조물을 가꾸도 돌보도록 부름 받은 인간을 포함한 피조물의 의미는 원죄를 통해서도 변경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간추린 사회교리』 256항 참조)

     

    구약성경이 나타내는 노동에 대한 가르침 가운데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바로 안식일의 휴식에 대한 계명입니다. 인간은 노동의 숙명에 묶여 있기는 하지만, 이 휴식은 더 충만한 자유와 영원한 안식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휴식은 인간이 창조에서 구원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활동을 기억하고 새롭게 경험하며, 자신들을 하느님의 작품으로 인식하여 생명을 주시고 양식을 주시는 주인께 감사드릴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안식일을 기념하고 지키는 것은 우리가 일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고, 드러나거나 감추어진 모든 종류의 착취에서 인간을 막아주는 방패가 됩니다. 안식일은 사람들이 하느님 예배에 참여하도록 이끌 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자 제정되었습니다. “너희는 여섯 해 동안 땅에 씨를 뿌리고 그 소출을 거두어들여라. 그러나 일곱째 해에는 땅을 놀리고 묵혀서, 너희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들이 먹게 하고, 거기에서 남는 것은 들짐승이 먹게 해야 한다. 너희 포도밭과 올리브 밭도 그렇게 해야 한다. 너희는 엿새 동안 일을 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이는 너희 소와 나귀가 쉬고, 너희 여종의 아들과 이방인이 숨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탈출 23. 10-11) 안식일과 안식년에 관한 규정은 인간의 노동이 반사회적 타락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즉, 인간 노동을 통한 재산 축척이 때로는 다른 이들의 재산 결핍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심오한 직관에 따른 것입니다.(『간추린 사회교리』 258항 참조)


    2.2. 신약성경


    우선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 안에 인간 노동에 대한 신약성경의 이해가 잘 나타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노동자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와 똑같은 모습의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실 때, 하느님은 왕실의 왕족도, 성전의 사제도 아닌 목수 노동자의 아들로 인간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온 생애의 가장 긴 시간을 직접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로 살았습니다. 또한 공생활 중, 당신의 사명을 맡기신 제자들 역시 노동자 가운데에서 뽑았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은 고기를 잡는 어부 출신이었고, 마태오는 세금징수원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도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한 비유에 활용됩니다. 수확할 밭의 추수꾼(마태 9. 35), 씨 뿌리는 사람(마태 13. 1), 진주 상인(마태 13. 44), 고기 잡는 사람(마태 13. 47), 포도밭 주인과 일꾼(마태 20.1)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또 자신이 받은 탈렌트를 땅에 묻어 둔 쓸모없는 종의 행동을 비난하시고(마태 25. 14),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종을 칭찬하십니다.(마태 24. 26)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 17)라고 이야기하시며 당신의 사명을 일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시고 제자들은 주님의 수확, 곧 복음화를 위한 일꾼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가르침 안에서 인간의 노동과 휴식에 관한 구약의 정신을 재확인해 주십니다. 무수히 많은 순간 안식일에 사람들을 고쳐주시면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님”(마르 2. 27)을 분명히 하십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안식일은 당신의 날이며 이날은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느님과 다른 이들에게 온전히 헌신해야 하는 날임을 보여주십니다. 사람들을 악에서 벗어나게 하고 형제애와 나눔을 실천 할 때 노동은 그 가장 숭고한 의미를 얻게 되며, 휴식이 인간이 내적으로 갈망하는 축제로 거행될 때 인류는 영원한 안식일을 향한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에게 하느님의 안식일을 체험하게 하고 생명에 동참하도록 이끌 때에 노동은 지상에서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삶과 말씀 안에서 노동은 매우 긍정적인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한편으로 인간은 일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하며 구약의 전통 안에서 내려오는 안식일의 정신에 따라 무엇보다도 인간은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인간에게 노동은 온 세상을 얻는 것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마르 8. 36) 천상의 보화를 쌓는 일이어야 합니다.(마태 6. 19) 그러하기에 우리가 일을 하는 것은 걱정거리가 되어서는 안되며(마태 6. 25, 31, 35)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마태 6. 33)(『간추린 사회교리』 259-263항 참조)

     

    노동에 대한 내용은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에서 또한 잘 나타낸다. 바오로는 사도행전 18장 3절에서 자신의 직업을 천막을 짜는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도 여행을 다니며 필요한 경비를 다른 누군가에게 얻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을 통해 마련한 것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목이 나옵니다.(“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 사도 20.34) 바오로 사도 역시 예수님처럼 노동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이는 그의 서간 안에서 권고와 명령의 형식을 통해 나타납니다.

     

    - 1테살 4. 11-12 “우리가 여러분에게 지시한 대로,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바깥 사람들에게 품위 있게 처신할 수 있고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 2테살 3. 10-11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 콜로 3. 23-24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주님에게서 상속 재산을 상으로 받는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은 주 그리스도의 종이 되십시오.”

     

    또한 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과도한 노동을 경계하는 안식일과 희년의 정신은 야고보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야고 5. “.보십시오, 그대들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 귀에 들어갔습니다.”

     


    3. 교부들의 가르침과 수도 공동체 안에 나타난 노동의 정신


    사도시대를 이어 초대교회의 가르침을 확립하고 신앙의 전통을 수호한 사람들을 교부라 칭하는데, 이들의 가르침 안에서도 노동의 가치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노동을 ‘노예의 일’로 여기지 않고 언제나 ‘인간의 일’로 간주하며, 다양하게 표현되는 모든 노동을 존중했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노동을 통하여 인간은 하느님과 더불어 세상을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인간은 세상의 주인이 되고,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하여 유익한 것들을 성취합니다. 게으름은 인간 존재에 해로운 반면, 활동은 몸과 정신에 모두 유익하다고 가르칩니다. 성 대 바실리오와 성 아타나시오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신이 먹을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더욱 가난한 이웃들에게 먹고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주고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 보살피며 친구가 되어 주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그들을 받아들이도록 노동이 요구된다고 말합니다. 또한 성 암브로시오는 모든 노동자는 그리스도의 손이 되어 창조와 선행을 계속 하는 것이라고 표현했으며, 성 이레네오는 하느님의 솜씨와 지혜를 나누어 받은 인간은 자신의 노동과 근면함으로, 성부께서 이미 세워 놓으신 우주인 피조물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교부들의 전통 안에서 노동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수덕의 영역으로 높여졌으며, 이를 두고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네딕도 성인은 자신의 수도 규칙서에서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아름다운 말로 노동을 하느님께 향하는 중요한 길로 묘사했습니다. (『간추린 사회교리』 265-266항 참조)

     


    4. 가톨릭 사회교리 전통 안에서 노동


    4.1. 사회교리 회칙이란?


    ‘회칙’이라는 말은 회람 편지를 뜻합니다. 교회는 초창기부터 다양한 교회 공동체와 연락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이런 회람편지(회칙) 형식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8세기 중엽부터 양식이 고정되었고, 교황의 여러 가지 종류의 서한들 중에서 좀 더 중대한 문제를 더욱 성대하게 다루는 서한을 회칙이라 불렀습니다. 회칙은 당대 사회가 직면한 신앙의 진리 문제에 대한 교황의 가르침으로 가장 권위 있는 수준의 문헌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회칙의 주제가 신앙의 오류를 지적하려는 목적이 아닌, 그 시대 사람들이 격고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한 복음적 성찰에서 나온 것을 사회교리 회칙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4.2. 주요 사회교리 회칙과 교회 문헌

    교황

    제목

    발행연도

    레오 13세 (1878 ~ 1903)

    새로운 사태(회칙)

    1891

    비오 10세 (1903 ~ 1914)

     

     

    베네딕도 15세 (1914 ~ 1922)

     

     

    비오 11세 (1922 ~ 1939)

    사십 주년(회칙)

    1931

    하느님이신 구세주(회칙)

    1937

    비오 12세 (1939 ~ 1958)

     

     

    요한 23세 (1958 ~ 1963)

    어머니요 스승(회칙)

    1961

    지상의 평화(회칙)

    1963

    바오로 6세 (1963 ~ 1978)

    사목헌장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1965

    민족들의 발전(회칙)

    1967

    팔십 주년(교서)

    1971

    세계 정의

    (세계 주교위원회 문헌)

    1971

    현대의 복음 선교(권고)

    1975

    요한바오로 1세 (1978)

     

     

    요한바오로 2세 (1978 ~ 2005)

    노동하는 인간(회칙)

    1981

    자유의 전갈

    (신앙교리성 훈령)

    1984

    자유의 자각

    (신앙교리성 훈령)

    1986

    사회적 관심(회칙)

    1987

    백 주년(회칙)

    1991

    베네딕도 16세 (2005 ~ 2013)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회칙)

    2005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회칙)

    2007

    진리 안의 사랑(회칙)

    2009

    프란치스코 (2013 ~ )

    복음의 기쁨(권고)

    2013

    찬미받으소서(회칙)

    2015

     

    4.3. 노동을 주제로 한 주요 회칙들


    1) 교황 레오 13세 회칙 [새로운 사태] 1891년

    - 배경 : 산업 혁명 이후 전통사회의 붕괴, 사회주의의 등장,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

    - 최초의 사회교리 회칙, 사회에 대한 교회의 개입 전통 확립

    - 노동과 자본의 긴밀한 결합 강조 : “노동 없는 자본 없고 자본 없는 노동 없다.”

    - 대량생산, 시장교환, 임금제도, 화폐제도, 이윤과 경쟁 등의 출현과 의미를 정리하며 여기서 파생된 사회문제를 요약

    -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주의자들이 내세우는 계급투쟁과 사유재산 철폐를 거부,

    - 노동자 스스로 당사자로서 결사의 자유를 인정함

    -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위로부터의 개혁, 도덕적 호소와 회개를 강조

     

    2)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사십주년] 1931년

    - 배경 : [새로운 사태] 발표 40주년을 기념함, 세계 대공황이 최악의 시기일 때 발표됨

    - 사회교리의 본질과 방법, 목적을 다룬 문헌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님

    - [새로운 사태]의 발표로 인한 구체적 성과를 교회, 국가, 사용자, 노동자로 구분하여 제시

    - 사유재산제도, 노사관계, 적정임금, 사회질서 재건 등의 주제를 교회의 권위로 검토

    - 공산주의가 주장하는 계급투쟁과 사유재산 철폐를 비판

    - 독점 자본주의 비판 : 정경유착은 사회악

    - 임금의 정의 : 가족 생계에 필요한 임금, “보조성의 원리” 제시

     

    3)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어머니요 스승] 1961년

    - 배경 : [새로운 사태] 발표 70주년을 기념함, 미국의 월남전 개입, 베를린 장벽의 설치 등 국제사회에서 사회,경제,정치적으로 긴장이 고조하던 시기. 핵전쟁의 위협이 감지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일세계와 소련을 위시한 제이세계의 이념적 대립.

    - 새로운 사회문제를 선진국, 후진국의 격차 심화로 제시

    - 복잡해지는 사회 구조에서 공동선과 보조선의 원리 강조. ‘사회화’를 교회의 언어로 채택,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사유재산의 사회화가 아닌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으로 이해.

    - 노동자의 임금은 정으와 공평의 원칙에 따라 결정되어야 함을 강조

    - “관찰-판단-실천”의 방법론 채택

     

    4) 교황 바오로 6세의 교서 [팔십주년] 1971년

    - 배경 : 마르크시즘의 매력 증가

    - 마르크시즘에 대한 경고 : 계급투쟁, 전체주의, 초월적 가치의 부정에 대한 경고

    - 정치 영역의 강조 : 마르크시즘을 반대하는 의미

     

    5)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회칙 [노동하는 인간] 1981년

    - 공산국가인 폴란드의 노동자 출신 교황의 첫 번째 회칙

    -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회가 노동문제에 개입한 이유가 적정임금이었다면, 요한바오로 2세의 접근은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함.

    - 노동하는 인간들의 존엄성과 품위에 대한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해석

    - 노동의 객관적 측면(노동의 생산물, 생산도구, 과학기술)과 주관적 측면(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신을 구현하고 성숙을 도모함)으로 나누고 주관적 측면을 강조함

    - 노동으로 부름 받은 인간은 노동이 자신의 존재 이유이다. 그러므로 노동하지 않는 인간은 존재 의미를 상실한 것과 같다.

    - 간접고용주(국가, 사회제도)와 직접고용주의 구분 및 간접고용주의 역할 강조

    -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 강조. 이는 사물에 대한 인간의 우위라는 논리. 노동은 인간과 직결되지만, 자본은 간접적으로 연결됨

    - 가사노동의 존중 : 가장의 임금은 어머니의 역할을 존중하는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함

    - 노동의 영성 : 인간은 노동을 통해 창조주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회복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노동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기 위해 계속해야 할 사명으로 땀을 흘리는 것이다. 인간 노동의 노고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축복되고 승화되며, 구원의 수단이며 구원된 세상의 한 부분으로 참여할 자격을 갖게 됨을 설명한다. 노동하는 인간의 참된 모범을 그리스도에 찾음.

     

    5)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회칙 [백 주년] 1991년

    - 배경 :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동유럽의 독립, 남미 독재정권의 몰락.

    - 100년 전 발표된 [새로운 사태]의 특징과 가르침을 검토

    - 오늘날의 ‘새로운 것들’에 대한 성찰 : 사회주의 인간학적 오류 지적, 소비주의, 군비경쟁에 대한 비판

    - 새롭게 민주 정부를 구성하는 동유럽 국가를 향해 사적재화의 개념,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논함. 재화의 사적 소유와 보편적 목적을 설명

    - 전체주의 국가 체계의 위험성 지적.

    - 초월적 인간 존엄성에 기초한 교회의 사회관과 그리스도적 인간론 강조

     

     

    [참조]


    성 라파엘 아르나이즈 바론(St. Rafael Arnaiz Baron, 1911~1938)


    20세기 스페인 성인으로 트라피스트회 수사. 27살 짧은 생애로 삶을 마감했지만 그 누구보다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 전도유망한 건축학도의 길을 걷고 있던 바론 수사는 어느 날 트라피스트회 산 이시도로 수도원을 방문하고난 뒤 거룩함에 이끌려 모든 것을 버리고 수도회에 입회했다. 수도회 입회 후 건강이 약화돼 수차례 입퇴회를 반복했다. 이때 바론 수사가 남긴 영적 수기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2014년 교황 베네딕도 16세에 의해 시성.

     

    - “순무의 피루에트(한 장소에서 한쪽 다리를 축으로 회전하는 발레 동작)” -

     

    12월 어느 비오는 날 오후 3시. 할 일이 배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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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손에는 칼이 쥐어졌고, 앞에는 커다란 바구니에 순무가 가득 들어 있다. 이렇게 크고도 얼음같이 찬 순무는 본적이 없다. 껍질을 벗기는 수밖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있겠는가? 시간은 왜 이리도 더디 가는지! 순무 껍질과 알맹이 사이의 칼도 오늘따라 느리기만 하다. 꼬마 사탄, 추억은 계속 나를 공격해 온다. 왜 나는 집을 떠났을까? 여기서 이렇게 추위에 떨면서 이 보기 싫은 물건의 껍질을 벗기러 왔는가!

    ................

    날씨가 우중충하고 어둠침침하다. 창밖을 내다보지 않지만 그럴 것이다. 내 손은 새빨갛게 물이 들었다. 꼬마 사탄의 색깔과 같다. 발은 아예 굳어 버렸다. 얼어서... 그리고 영혼은? 주님, 어쩌면 영혼도 좀 아파하고 있겠지요. 그렇지만 이런 것들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침묵을 나의 피난처로 삼자.

    도대체 저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거룩하신 동정녀여! 무엇을 묻고 있습니까!...

    순무 껍질을 벗긴다. 순무 껍질을 벗기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무엇을 확실하게 깨달았는지! 그러나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영혼의 아주 깊은 곳으로부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음울했던 것 대신 커다란 평화가 찾아 왔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을 가지고도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표시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을. 그분의 이름으로 눈을 뜨고 감는 것, 그것으로 천국을 얻어낼 수 있음을.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순무의 껍질을 벗긴다면, 그것은 그분에게 큰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만큼이나 큰 공적이 된다는 것을. 오직 그분의 자비에 의해서만 이 거대한 행복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을 위해서 조금이나마 고통을 참아내는 것, 이런 모든 것은 참으로 영혼을 기쁘게 해 준다는 것을. 만일 내가 순간적인 나의 충동에 따라 행동하고 순무를 왼쪽, 오른쪽으로 마구 던져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땅 속에서 자란 이 가련한 뿌리들에게 마음의 기쁨을 나누어 주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순무와 칼과 앞치마로 대단히 기묘한 예술품을 만들어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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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을 끝내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발 아래서 기도하러 갔을 때, 나는 껍질이 잘 벗겨진 깨끗한 순무 한 바구니를 그분의 발 아래 놓아 드렸다. 내게는 그것밖에 그분께 드릴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께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바친 희생이라면 그것이 순무 깍기이건, 한 국가를 다스리는 일이건 관계없이 충분하다. 다음에 또 내가 순무 깎는 일을 하게 되면, 순무가 차든지, 얼음 같든지, 어떻든지 간에 나는 마리아께 청해서 빨간 꼬마 사탄이 나를 미쳐 날뛰게 유혹하는 것만큼은 그냥 두지 말아 달라고 하겠다. 그와는 정반대의 것을 그녀에게 청하겠다. 나에게 천사들을 보내 달라고, 그래서 동정녀 마리아의 발 아래는 빨간 무를, 예수님의 발 아래는 흰 무를, 그리고 감자, 양파, 양배추와 상추를...

    마지막으로, 만일 내가 수도원에서 오래 살게 된다면 나는 천국을 야채 시장처럼 만들겠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부르시면서 "이제 됐다. 껍질 벗기는 일은 그만 두어라. 칼과 앞치마도 벗어버리고, 네가 한 일을 보고 즐기러 오너라"하고 말씀하시면 그 때, 하느님과 성인들 사이에 쌓여 있는 산더미 같은 야채를 보게 될 때, "주님, 나의 예수님, 저는 웃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하고 말하리라.



    <청소년 노동인권 관심자 교육 제1강 - 신앙의 눈으로 노동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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