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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곱의 우물] '감정노동' 바라보기
    • 등록일 2015-05-21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3092
  • 야곱의 우물 6월호  - 교회와 사회

     

    ‘감정노동’ 바라보기 


    본당에서 보좌 신부로 살던 시절에 교우 분들과 회합을 마치고 식당에 같이 갈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한번은 신앙생활을 한지도 오래 되었고, 본당에서 여러 단체를 맡아 봉사한 경험도 많은 형제님과 같이 식사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을 나와 자신의 분야에서 크게 성공해 경제적 안정을 이룬 분으로서 어려운 이웃을 남모르게 많이 돕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하는 순간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형제님이 식당에서 서빙하시는 분에게 너무나 거리낌 없이 반말로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말을 편하게 놓는 것이 아니라, 강압적이고 지시하는 말투였습니다. 상대가 모욕적으로 느낄 정도로 이거 가져와라.. 저거 가져와라.. 하며 때때로 꾸중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분은 당신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어린 제게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고, 식당에서도 상석을 권하며 예의를 갖추셨는데, 식당에서 상차림을 하는 분에게는 너무나 고압적인 자세로 대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때 서빙하시는 분 앞에서 무척 무안했고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성당에서 활동하는 모습과 식당에서 음식 주문하는 모습이 너무나 다른 그 형제님의 모습에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흔히 손님은 왕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이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손님은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기에 당당하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내가 지불하는 금액으로 상대방의 인격까지 살 수 있을까요? 돈을 냈으니 우리는 얼마든지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고 존중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하루에도 몇 번씩 들리는 음식점, 백화점, 영화관, 커피숍 등에서 내가 구입할 수 있는 것은 매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통해 받는 서비스이지 한 사람의 인격은 구입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안에는 서비스 노동자를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무시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왕이라는 말의 참된 의미는 백성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일텐데, 소비자가 왕이란 말에는 그러한 사랑과 존중이 자리할 공간은 없어 보입니다. 서비스 산업에서 무례한 손님은 왕이 아니라 폭군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얼마 전 국회에서 감정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의 회의에 참석한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아시겠지만 감정노동이란 본래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조직(기업)내에서 요구되어지는 감정을 오랜 시간 표현하게 되는 노동형태를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콜센터에 근무하는 상담원들이나 비행기의 승무원, 혹은 백화점이나 마트의 판매 보조원 등이 이러한 노동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도 3차 산업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서비스 산업은 전체 산업의 약 60%를 차지하게 되었고,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역시 전체의 70% 정도에 이른다는 조사가 있을 정도로 감정노동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치는 노동 형태 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감정노동에 노출된 노동자들의 피해가 점점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라면 상무, 땅콩 회항, 아파트 경비 노동자의 분신 등,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굵직한 사건 말고도 일상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는 그저 가끔 만나게 되는 무례한 손님 정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고객만족경영, 고객친절경영 등을 내세우며 인격적 모독까지도 노동자들이 담당해야 할 몫으로 돌리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격 모독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는 커녕, 그러한 모독을 견뎌내는 것이 마치 노동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장시간 감정노동에 노출되었을 때에는 화병이나 대인기피증, 우울증 등 정신질환 등이 나타나게 된다고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일을 그만두게 되거나 심지어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모멸감에 자살을 선택하는 안타까운 일들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모욕을 당하고 그것을 견디는 것이 노동일 수는 없습니다. 감정노동으로 상처받는 노동자의 긴급한 구호 요구를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거나, 아니면 회사의 이미지만을 걱정하기에 쉬쉬해서도 안됩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라 할지라도 심각한 모독을 견뎌내라고 말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감정노동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도 산업 재해로 인정해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감정노동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기본적 노동 인권에 대해 성숙한 시각을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건내면, 어떻게 기분 상하지 않으면서 일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느냐, 감정을 조절하지 않으면서 일하는 것이 어디 있느냐? 하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네에. 그렇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사제로 살면서 노동은 아닐지라도 많은 순간 사람들을 만나면 우는 사람과 같이 울어주고,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기에 일과 감정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누군가와 함께 기뻐하거나 슬퍼할 때, 적어도 저는 모욕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진료실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도, 재판 받는 사람을 변론하는 변호사도 모두 감정을 가지고 일하지만 그러한 서비스를 받는 사람으로부터 모욕당하는 일을 감내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유독 서비스 분야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미약해지기에 감정 노동의 문제가 새로운 노동 문제로 이야기 되는 것입니다.

      

    식당이나 매장에서 친절하게 서비스를 받고 감사하다는 인사말 나누며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웃음 뒤에서 참아야 했던 감정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짜 웃음이 아니라 진짜 웃음으로 상하 관계가 아닌, 인격적 관계로 우리모두 성숙해 질 것입니다. 매장에서 웃음을 강요당하는 감정 노동자도 퇴근해서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면,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어머니요, 누이, 그리고 아들이나 딸일 것입니다.

                                                                                          천주교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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