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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정규직 확산으로 인한 고통을 막는 종교계의 역할
    • 등록일 2015-04-09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3278
  • [정부의 비정규직 확산 정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토론회중에서 

                                                                  

                                                                

    비정규직 확산으로 인한 고통을 막는 종교계의 역할

     

     

    천주교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정수용 신부

          

     

    시작하며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주제이다. 그들은 신의 존재를 믿고 신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 노력하기에 신 앞에서 인간은 언제나 스스로를 유한한 존재로 인식한다. 하지만, 이러한 유한함은 나약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영원을 향해 열려있는 존재로서 바라보는 유한함이다. 그러기에 죄와 죽음이라는 그리스도교의 오랜 주제 앞에서 인간 고통의 다양한 측면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비구원적인 상황이 끝나는 것을 천국, 영원한 생명, 하느님 나라 등으로 설명하며 세상 마지막 순간을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로서 교회 공동체를 규정한다. 즉, 영원과 순간, 무한과 유한 사이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간극 만큼이 언제나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신이라는 주제를 빼고 생각해도 고통은 매우 현실적이다. 종교를 갖지 않고 살아가는 무신론자 안에서도 더 좋은 내가 되고 싶다는 갈망은 늘 존재하기에 고통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더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부지런한 내가 되고 싶고, 더 부유한 환경과 더 건강한 신체를 갖길 원하지만 우리의 도덕성과 인성, 혹은 경제력이나 체력은 내가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에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인간이 더 좋은 무엇, 더 완전한 무엇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향해 있기에 고통은 종교의 영역을 떠나서도 언제나 설명할 수 있다.

     

    물론 개개인에 따라 더 좋고 완전한 것이 무엇인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서로 다를 수 있다. 가난한 이웃에게는 경제적 안정이 더 절실하고 병자들에게는 신체적 건강이 더 간절하며, 외로운 이에게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애정이 더 목마를 수 있다. 그러하기에 고통은 그가 종교인이든 무신론자든, 세속적이든 영적이든 상관없이 인간 존재 자체에서 우리가 어떤 완전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기에 피할 수 없는 부산물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고통의 문제에서 피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특히 그리스도인에게는 더 큰 책임과 관심이 요청된다. 바로 자신의 고통 뿐 아니라 세상 전체의 고통을 바라보고 함께 아파하며 나아갈 길을 찾아 헤매는 역할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세상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의 슬픔과 고뇌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간직해야 하는 슬픔과 고뇌여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슬픔이 바로 신앙인의 슬픔이고, 가난한 이웃의 고뇌가 바로 신을 찾는 이들의 고뇌일 때, 신앙인들만의 구원이 아니라 세상의 구원이 다가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나라 노동 현실 가운데 큰 고통을 낳고 있는 비정규직의 고통을 바라보고자 한다. 제안 받은 글의 제목은 “비정규직 확산으로 인한 고통을 막는 종교계의 역할”이지만, 필자의 개인적 한계로 인해 다양한 종교 전체의 입장과 활동을 소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잘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내용을 전하는 것은 큰 실례를 범하는 일이기에 글의 논점은 가톨릭의 입장에서 바라본 내용으로 제한하고자 함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1. 관찰 : 비정규직 확산으로 인한 고통은 무엇인가?

     

    1.1. 비정규직의 규모

    - 현재 우리나라 비정규직 규모는 2014년 8월 통계청 기준으로 607만명.

    - 이는 전체 노동자의 32.4%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 하지만 여기에는 정부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내하청, 특수고용직 노동자들까지 계산할 경우

    비정규직 규모는 전체 10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 이는 전체 임금 노동자의 50%가 넘는 규모이다.

    - 자영업자가 아니라 월급을 받는 사람 가운데 두 명 중 한 명은 비정규직인 꼴이다.

          

    1.2. 비정규직의 임금 불평등

    - 최근 한 주간지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1천 여 명을 실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비정규직 평균 임금은 185만원으로 근로소득 평균 409만원의 45%수준이었다.

    - 맞벌이 등을 합산한 가구소득 역시 비정규직 가정은 월 301만원으로

    도시근로자 월 평균 소득 470만원의 64%였다.

    - 2014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비정규직 평균임금은 144만원로 나타났다. 

     

    1.3. 임금 이외 요소에 대한 불평등

    - 국민연금 적용률 : 정규직(83%) vs 비정규직(49%)

    - 고용 보험 적용률 : 정규직(67.6%) vs 비정규직(42.7%)

    - 노조 가입률 : 정규직(17.3%) vs 비정규직(2.5%)

          

    1.4. 비정규직의 고착화

    - 비정규직자 중에서 51.4%는 한 번도 정규직 경험이 없다고 응답했다.

    - 1년 뒤에 정규직으로 이동하는 비율이 불과 11.1%하다.

    -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등 비교 대상 16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이다.

    - 비정규직은 우리나라에서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운 함정으로서 역할이 대부분이며

    가교로서 기능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미약하다는 것이다.

     

    1.5. 불평등으로 인한 고통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정규직 제도의 결과 우리사회는 심각한 불평등을 낳았고 이는 돌이킬 수 없이 단단해져가는 것에 사회적 고통을 낳고 있다.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현대판 신분제도의 고착화로 나타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불평등은 대를 이어 등장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가정의 자녀들 역시 낮은 임금 구조 안에서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기에 양질의 일자리에 진입하지 못한다. 결국 그들 역시도 저임금, 고용불안, 위험한 근로조건과 싸워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몰리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역시 그들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구약시대 병자를 죄의 결과로 생각했기에 그들을 아픈 이들로 대하지 않고 죄인으로 여겼던 것처럼, 비정규직이라면 능력 없고 게으른 사람, 실패하고 뒤쳐진 사람 정도로 생각하며 죄인으로 여긴다. 사회적 시선이 이러하기에 비정규직 노동자 안에서도 자신에 대한 존엄함을 느끼지 못하고 늘 주눅 들어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고통이 바로 불평등의 경제가 만들어낸 모습이다.

     

    2. 판단 : 가톨릭 사회교리 가르침

     

    가톨릭 교회에서 교종이 낼 수 있는 가장 권위 있는 문서를 회칙이라 부른다. 이는 신앙과 진리를 밝혀주는 것으로 교회의 전통에 따라 중요한 문제에 대해 가장 강조하는 형식으로 나타낼 때 발표하는 문헌이다. 그런데 역대 회칙들은 모두 신앙에 관련한 내용이었으나, 19세기 말부터는 신학적 내용이 아닌 사회 문제에 관해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규범으로 회칙을 발표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회적 가르침을 모은 것을 사회교리라 한다.

     

    역사상 첫 번째 사회교리 회칙인 “새로운 사태”는 1891년 자본주의의 태동 이후 도래한 사회적 혼란기에 발표되었다. “새로운 사태”는 흔히 가톨릭교회의 노동헌장이라 불리는데 지금으로부터 120여년의 시간차가 믿기지 않을 만큼 오늘날의 현실에도 노동에 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다.

     

    “자본가와 고용주가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들은 고용인들을 노예처럼 취급하지 말아야 하고 그들이 혹시라도 그리스도교인이 됨으로써 더욱 품위를 지니게 되는 인격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 이성과 신앙에 비추어볼 때 노동은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수고로써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품위를 드높여준다. 참으로 부당한 일은 인간을 마치 이윤 추구를 위한 물건처럼 마구 다루는 것이고 오직 노동 기술이나 노동력으로써만 인간을 평가하는 것이다.

    ... (중략) ...

    그들의 의무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각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는 것이다.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하여 정의에 따라 임금을 결정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가들과 고용주들이 대체로 명심해야 할 원칙은 자신의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곤궁한 자들과 불쌍한 자들을 억압하고 이웃의 비참을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신법과 실정법이 모두 금한다는 사실이다. 정당한 임금을 착취하는 것은 하느님께 복수를 호소하리만치 중대한 과오이다. ‘잘 들으시오. 당신들은 당신들의 밭에서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가로챘습니다. 그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또 추수한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의 귀에 들렸습니다(야고 5,4)’”

     

    이러한 “새로운 사태”를 시작으로 하는 여러 사회 회칙들은 노동에 있어서 차별은 하느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며 노동은 기타 재화처럼 단순한 상품으로 거래해서는 안됨을 분명히 한다.

     

    “노동이란, ... 사실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노동자도 그 존엄성이 인정되어야 하며 노동은 일종의 상품처럼 사고 팔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수요 공급은 노동 시장에서 인간을 두 진영 같은 두 계급으로 나누고 있으며, 양편의 거래는 이 노동 시장을 두 개의 군대가 전투에 참가한 싸움터로 바꿔놓고 있다.”

     

    19세기 말 “새로운 사태”를 시작으로 최근에 이르기까지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나타낸 사회교리 회칙은 총 20여 차례에 걸쳐 발표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 노동은 언제나 중요한 주제였다. 그리고 내용 역시 시대를 거쳐 가며 발전하게 된다.

     

    처음에 가톨릭교회는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서도 상호적 입장으로 “자본은 노동 없이 있을 수 없고, 노동은 자본 없이 있을 수 없다”(“새로운 사태” 14항, 1891년)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교종 요한 바오로 2세의 “노동하는 인간”에서는 교회는 항상 노동이 자본보다 우위에 있음을 가르쳐왔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을 이어 교종 베네딕도 16세의 “진리안의 사랑(2009)”, 교종 프란치스코의 “복음의 기쁨(2014)” 등에서도 불평등의 경제가 가져오는 불의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었다.  

     

    3. 실천 : 종교의 역할

     

    3.1. 국가의 올바른 기능 촉구

    노동 문제 대부분은 노.사의 첨예한 갈등의 대치점인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 문제 역시도 고용과 임금에 대한 노.사의 입장차가 너무나 크기에 고통의 현실 앞에서도 시간만 흐르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갈등의 주체 사이에서 올바른 방향을 잡아야 하는 역할이 바로 국가이다. 국가가 어떠한 의지를 가지고 정책을 진행하는지에 따라 사실 많은 부분의 노동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최근 비정규직 제도의 시행과 정책적 노선 사이에 나타난 정부의 역할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중립적 입장만 취한다 하더라도 좋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부는 자본 편향적인 정책에 따라 비정규직 제도를 진행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부의 올바른 역할을 주문하고, 정부의 기준을 불평등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는 역할에 교회가 적극 나설 수 있을 때, 다양한 사회 주체 간에 합리적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행위라는 일부의 비난이 있으나, 종교 본연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이는 정치 행위가 아닌 정의의 행위로서 종교가 마땅히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사안인 것이다.

      

    3.2. 연대성의 정신

     

    연대성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네 가지 기본 원리 중 하나이다. 오늘날 불평등의 경제의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무관심의 경제, 배척의 경제이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하고 살아가기에 더욱 힘들고 아픈 세상이다. 그러기에 오늘날 연대의 정신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강하게 요청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천주교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역시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천주교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최근의 10여년은 국내 노동 현장에 자주 얼굴을 보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름 이유를 가지고 있다면, 그동안 쏟아지는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와 노동 문제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활동의 방향이 국내 노동 현장의 목소리보단 이주민, 다문화 가정 등에 관한 문제로 활동이 집중되다보니, 국내 노동 현실의 불의한 사안과 현장에서 멀어졌었다. 그러다 최근 2014년을 기점으로 서울대교구 역시 오늘날 현실에 맞는 사목적 방향성을 고민하다 이주 노동자 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를 신설하고, 그간 이주 사목에 비중이 커졌던 노동사목위원회가 다시 국내 노동현실 문제에 함께 할 수 있는 구조로 개편하게 되었다. 때를 같이 하여 삼개 종단 노동 실무자들과 연대를 시작했고, 다양한 형태로 노동계와도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을 비정규직 제도 개선에도 매진하여 종교계 간의 연대, 시민 사회 진영과의 연대, 노동계와의 연대를 이룰 수 있을 때 더 큰 사회적 합의를 통한 노동 조건 개선을 이루고 불평등의 경제, 배척의 경제 구조를 개선하는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3.3. 노동 인권 교육의 강화

     

    가톨릭 사회교리는 그 시작부터 노동조합의 조직과 활동을 강조하고 장려해왔다. 다양한 형태로 이를 제시했고,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 가입률은 역사상 20%를 넘은 적이 없고, 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다. 게다가 비정규직 사업장에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더욱 낮게 나타난다. 이는 사회 전반에 걸친 반노동, 반노조 정서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종교계가 시행하는 다양한 교육 사업 현장에서 노동 인권 교육을 강화한다면, 노동의 가치와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인식 전환을 이루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노동 인권 교육은 당장의 결실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사회의 심각한 비대칭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한 중요한 노력으로 종교계가 앞장 설 수 있는 부분으로 생각한다.  

     

    마무리하며

     

    글을 시작하며 인간이 가지는 고통의 의미에 대해 제일 먼저 생각해보았었다. 이제 글을 마치며 비정규직의 고통은 그 자체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비정규직은 자신을 설명하는 용어 자체에서부터 너무나 슬프게 다가온다. 스스로를 ‘나는 ○○이다’라고 정의 하지 못하고 ‘나는 ○○이 아니다’라고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비정규직은 그 자체가 고통이다.

     

    경제를 지배하는 논리가 끊임없이 수익률과 생산성이란 가치를 최고로 생각하며 인간 노동 본래의 가치를 망각하는 한, 비정규직 문제는 풀기 어려운 방정식이 될 것 같다. 여러 숫자만 대입해 보고, 상수와 변수의 자리만 바꾸어 볼 뿐 결국 모두를 만족시키는 안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하기에 보다 큰 틀에서 비정규직 제도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고통이 다른 한편으로는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희망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우리 모두는 현실의 불의를 고쳐 정의로 나아가고 싶어 하고, 지금의 차별을 없애고 공정을 이루고 싶어하지 않는가? 그 고통을 느끼고 함께 아파하며 그들의 편에 서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 바로 그러한 공동선을 향한 열망이 비정규직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길이라 희망해본다.

     

    그리고 이렇게 노동을 통해 인간 존엄성을 실현하는 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방향을 고민하여 제시하는 역할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참여하도록 하는 역할에 종교계도 그 힘을 보탤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각주는 생략되었습니다. 원문은 PDF파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첨부파일
    report 2015-1.pdf
    20150407-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