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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정의 문헌] 마르크스주의 비판
    • 등록일 2022-06-03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84
  • 마르크스주의 비판

       기업가, 공장, 다국적 거대 기업, 무기 매매를 이야기할 때, 불의하고 때로는 사악한 경제 체제가 야기하는 남용, 부패, 마피아, 착취, 노예살이를 고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주의가 불의한 자본주의 권력과 그 일탈에 대항하여 강력하고 적절한 비판을 제기하였음은 분명합니다. 학자들과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의 이러한 비판은 유다교-그리스도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인들을 (때로는 히브리인들도)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격렬한 반박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실제로 권력에 대한 마르크스의 몇 가지 비판을 그리스도교의 사회사상에 비견하는 사조가 늘 존재해 왔습니다.

       레오 13세께서는 산업 혁명이 한창이던 때에, 곧 기업가와 노동자 간의 첨예한 갈등의 시기에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반포하시어 최초의 중대한 사회 문제인 노동 문제를 제기하심으로 써, 가톨릭 교회 학자들이 노동과 경제 분야에 관하여 체계적인 성찰을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분명히 복음서의 일부 구절들은 잘못 이해하면 이러한 비난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리스도교 사상 역시 마르크스주의 사상 때문에 혼란에 빠진 것도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 말씀들이 지닌 힘을 너무도 흔히 잊고 있습니다(“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하느님과 재물”,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신약 성경에서 동일한 유형의 강하고 신랄한 문장들이 거듭 등장하는 것은, 실제로 예수님께서 그렇게 단호히 말씀하셨어야 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교 초기에도 그러한 말씀들은 틀림없이 불편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이미 상기하였듯이, 최초의 공동체들 안에는 부자나 다소 풍족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이 그리스도교의 첫 몇 세기를 거치면서 살아남은 것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거듭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예레미야와 이사야가 그러하였듯이 거짓과 권력 남용을 반대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언자들에 따르면, 권력은 그 자체로 부패하고 돈은 부패의 원천이 되기 마련입니다.

       마르크스는 사회 안에 존재하는, 권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돈을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사이의 해소될 수 없는 갈등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또한 마르크스는 권력과 돈을 가진 이들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거슬러 권력과 돈을 사용한다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하였을 때 그가 틀림없이 정의롭게 보였을 것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마르크스주의와 그리스도교 간에는 교집합, 곧 많은 유사한 개념이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분석들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교와 마르크스주의는 근본적으로 매우 다릅니다. 이제는 그와 같은 동일시가 조금은 억지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음에도, 1960년대에는 많은 이들이 예수님께서 첫 번째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을 지지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특정 인간학과 예언자적 담론을 마르크스가 받아들여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였고 이에 따른 접점과 유사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공산주의자라는 주장보다는 마르크스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을 지지하고 추론하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한편, 이념들이 현실을 단순화시키곤 한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마르크스와 공산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계급 투쟁에서 세상을 읽는 열쇠를 발견한 것은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계급 투쟁을 사회 경쟁을 이해하는 유일한 열쇠로 삼은 것은 이념의 작용이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예정론의 시각에서 공장과 고용주의 비유만으로는 복잡한 노동계와 경제계 전체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충돌 없이 합의로 해소되고 있는 사회 갈등, 노사 갈등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노동과 자본의 관계는 단지 하나의 투쟁으로만 여겨질 수 없습니다. 레오 13세께서는 “자본은 노동 없이 있을 수 없고 노동은 자본 없이 있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현재에도 여전히 소중한 진리입니다. 비오 11세께서 밝히셨듯이, “자본과 노동의 협력으로 얻어진 것을 어느 한편에만 귀속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그릇된 것이며, 또한 어느 한편이 다른 편의 노력을 무시하고 모든 이익을 독점한다는 것은 정의에 크게 어긋납니다.”

       한편 더욱 일반적으로, 인간 개인이 경제 구조나 정치 구조에 의하여 착취당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자유를 잃어버립니다. 『간추린 사회 교리』는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회와 국가에 대한 모든 전체주의적 시각이나 진보에 대한 순전히 세속적인 이념은 인간에 대한 온전한 진리와, 역사 속에서 펼치시는 하느님의 계획에 반대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회 정의 – 돈과 권력 p143-146

    미켈레 찬추키 편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전문보기 https://cbck.or.kr/Documents/Read?category=K5280&oid=20190241&gb=title&search=%EB%8F%88%EA%B3%BC%20%EA%B6%8C%EB%A0%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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