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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정의 문헌] 연대성은 바로 돌려주는 것
    • 등록일 2022-07-22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46
  • 연대성은 바로 돌려주는 것

       이러한 희망의 몸짓이 연대성의 원동력이 됩니다. 연대는 모든 이가 좋아하는 말은 아닙니다. 때때로 연대는 으스대면서 남은 것을 내주거나, 마음 없이 하는 자선, 이따금 관용을 베푸는 행위로 평가 절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대성이라는 말의 그 풍성한 의미를 재발견해야 합니다. 연대성은 사회 원리이면서 동시에 도덕적 덕목입니다. 이는 무엇보다 공동체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소수의 개인이 재산을 독차지하는 것보다 모든 이의 삶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연대는 빈곤의 구조적 원인, 불평등, 실업에 대항하는 투쟁입니다. 또한 땅, 학교, 주거를 위한 투쟁. 사회권과 노동권의 수호를 위한 투쟁입니다. 이는 돈의 군림이 가져오는 파괴적인 영향력과 싸운다는 뜻입니다. 그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 연대는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에서 상기시키고 있듯이, “연대는 재산의 사회적 기능과 재화의 보편적 목적이 사유 재산에 앞선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이들의 자발적인 행동입니다. 재화의 사적 소유는 그 재화를 보호하고 증진하여 공동선에 더 잘 이바지할 수 있을 때에 정당화 됩니다. 이러한 까닭에 연대는 가난한 이들에게 속한 것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결정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연대의 이러한 확신과 실천이 이루어질 때에 다른 구조적 변화의 길이 열리고 그러한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새로운 확신과 태도가 생겨나지 않은 채 구조만 바꾸면, 그 구조는 오래지 않아 부패하여 억압적이고 비효율적 인 구조가 될 뿐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에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연대 의식을 키워 나가려면, 비참한 상황에 발 담그고, 피 흘리는 형제의 상처 입은 몸을 어루만져 주어야 하며, 이웃과 변두리와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어야 하고, 심지어 두려움 없이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투쟁도 마다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악과의 싸움은 길고 어려운 투쟁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하고 되새겨 주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대는 자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의식을 지니고 사회 건설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연대는 개인주의와 개인적인 주관성의 과대평가에 대항하고, 공허한 전례와 신심 서적 읽기에만 만족한 채 사회에 창의적으로 기여하고자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무사안일주의와 반대되는 것입니다. 연대는 “시류에 맞서” 나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연대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을 조건 없는 베품과 용서와 화해 안에서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안타깝게도, 경제와 환경 위기에 대한 구체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많은 노력들이 힘 있는 자들의 반대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에 무산되곤 합니다. 신자들 가운데서조차도 해결책을 찾는 데 방해되는 태도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여기에는 문제 자체의 부인은 물론 무관심, 적당한 체념, 기술적 해결에 대한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확신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보편적 연대가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회 정의 – 돈과 권력 p161-163

    미켈레 찬추키 편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전문보기 https://cbck.or.kr/Documents/Read?category=K5280&oid=20190241&gb=title&search=%EB%8F%88%EA%B3%BC%20%EA%B6%8C%EB%A0%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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