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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정의 문헌] 이성과 자비
    • 등록일 2022-08-19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23
  • 이성과 자비

       이 지구를 존중하지 않는 현상을 만회하려면, 너무도 흔히 제왕처럼 군림하는 불의와 세계 경제가 초래한 다른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성이 제 기능을 온전히 발휘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는 연민과 자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연민과 자비가 있으면, 정치와 경제 활동가들은 자신의 지력과 자신의 인적, 물적, 자연 자원들을 동원하여 세계화의 결과를 감시하고 시정할 뿐만 아니라. 지역적, 전국적,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책 책임자들이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정책의 방향을 선회하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비는 의심의 여지없이 정책 과정입니다. 시민, 정치, 경제의 생활에는 진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비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강생으로 아버지의 자비를 구현하시어 이를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아가라고 가르쳐 주시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영리상의 유혹이 따라오는 경우가 그러합니다. ‘영리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종업원들을 해고함으로써 더 많은 이익을 낼 수가 있다.” 영리 분야의 이러한 궤변은, 윤리 분야에서 정의하는 ‘결의론’(決疑論, casistica)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자비에 이르려면 이러한 결의론에서 벗어나 진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건전하지 않은 생각인 결의론적 사고방식과는 달리, 정의와 사랑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의롭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정의는 자비이고 자비는 정의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와 경제 행위를 할 때에는, 하느님 사랑의 또 다른 표현들인 선견지명과 지혜의 덕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확신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겨 드릴 때에 인간 지성은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교회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는 남녀노소. 가난한 이와 부유한 이, 기업가와 노동자, 이 모든 이가 지닌 선의를 알고 있습니다. 교회가 증진하는 사회사상은 시민 사회, 정부. 국제기구, 학문과 과학 공동체 등에 몸담고 있는 모든 주역들 사이에서 협력의 세계화를 증진하면서, 모든 이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지성의 사용을 이야기할 때에는,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데에 필요한 인내심을 지성이 고취하기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실제로 단기간에 혁신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오히려 그 결과는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때로는 전혀 그 결과를 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어찌되었든 모든 것은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켜보시고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를 이끌어 주시고 그 길을 밝혀 주시고자 계속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인내로 나아가는 것’(transitare la pazienza)이 필요합니다. 이는 개개인과 사회를 성숙시키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좀 더 서둘러 꽃을 피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존중해야 하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인내로 나아가는 것’은, 시간이 모든 사람의 삶을 형성하고 조화를 이루게 하며 세상을 위한 하느님 섭리로 마 련된 그러한 변화를 준비하도록 내맡기는 것을 뜻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회 정의 – 돈과 권력 p169-171

    미켈레 찬추키 편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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