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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4. 사랑의 최우선 대상인 고통받는 이웃과 현장
    • 등록일 2019-01-24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304
  • 가톨릭신문

    발행일2019-01-20 [제3129호, 16면]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4. 사랑의 최우선 대상인 고통받는 이웃과 현장

     

    다른 이의 고통은 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성과는 내 능력뿐만 아니라

    함께 일한 이웃 희생 고려돼야

    공동체 봉사 자체가 사랑 행위

         

     

    김해 삼방성가 나눔터 봉사자들이 어려운 이웃 어르신에게 도시락을 전하고 있다. 교회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 가르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박 형제: 신부님, 제가 팔을 다쳐서 깁스를 했습니다. 잘 쓰지 않는 왼팔인데도 다치고 나니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 신부: 얼마나 불편하세요! 그런데 저도 왼쪽 새끼손가락을 다쳤습니다. 별것 아니려니 했는데 참으로 불편합니다.

     

    박 형제: 새삼 제 몸의 소중함을 생각합니다. 신체 중에 소중하지 않은 곳은 없지요! 그리고 제가 아파 보니 아픔을 겪는 다른 이웃들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이 신부: 그렇습니다.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께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각 지체라고 하셨지요? 우리 몸은 모든 지체가 서로 연결돼 있어서 아주 작은 부분만 아파도 온 몸이 힘듭니다. 이처럼 교회도 아파하는 부분이 아무리 작아도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돌볼 것을 권합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 곳곳의 아픔과 갈등의 현장은 우리와 무관한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아파하는 곳으로 당신의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박 형제: 신부님, 비록 아파서 고생했지만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 찾아오시는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고통받는 자리를 보시며 그곳을 찾아가십니다. 가장 중요한 성경적 근거는 바로 탈출기입니다. 구세사의 시작은 이스라엘의 탈출 체험에서 비롯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당신 백성이 겪는 고통을 똑똑히 보셨고 그 울부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구하시기로 결정하십니다.(탈출 3,7-8) 사회교리 역시 이 탈출사건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과 무한한 자비를 1장에서 강조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제1장 20항)

     

    ■ 고통받는 이에 대한 우선적 선택

     

    사회교리의 목적은 사랑의 문명을 위해 평화로운 방법으로 공동체와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최우선 대상은 바로 아파하는 이웃과 현장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몸 중에서도 아파하는 곳이 바로 가장 요긴한 곳이기 때문입니다.(1코린 12,22) 내가 속한 사회와 국가, 온 인류는 그리스도의 지체인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다른 이의 고통이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곳으로 가서 희망과 용기를 전하길 원하십니다.

     

    ■ 내어주고 나누며 돌보아 주는 이들, 하늘나라를 얻은 사람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할 일을 다 마친 충실한 사람이 해야 할 말로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17,10)라고 하십니다. 성과와 공(功)을 내 것으로만 돌리지 말고 하느님과 세상, 이웃을 위해 나누고 섬기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우리는 내가 얻은 것이 나의 개인적 능력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함께 이룬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게 얻어진 모든 것은 나의 자수성가와 공로만이 아니라 함께 일한 누군가의 눈물과 희생 덕분입니다. 그러니 나누어야지요. 더욱이 세상의 아픈 이들과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의 행위이며 그 자체로 기쁘고 행복한 것이라 하셨습니다.(사도 20,35) 그리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나라를 얻게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처럼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고, 용서하고, 겸손하심으로 참기쁨과 참생명을 얻으시길 소망합니다.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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