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주교회의 정평위 노동소위 정책 토론회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사목소위원회가 7일 정기 토론회를 열고, '기후 위기와 노동의 미래' 문제를 다뤘다.지난 여름, 극심한 폭염 속에 노동자들이 온열 질환으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기후 위기는 노동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조건까지 위협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에서는 특히 발전 산업과 같은 탄소배출 산업 퇴출을 요구하는 게 당연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 보장과 맞물리지 못하고 있다. 주교회의 노동사목소위원회는 이번 토론회에서 이같은 갈등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공동 대응을 할 것인지 살폈다.발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중심으로 본 기후 위기와 노동자, 기후 위기에 따른 경제와 산업 구조 전환과 과제, 기후 위기 앞에 놓인 노동 위기와 대응 등의 주제가 이어졌다. 발표자로 이태성 간사(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 비정규노조 전체대표자회의), 김병권 자문위원(녹색전환연구소), 박태주 선임연구위원(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이 나섰다.시작에서 김선태 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소위원회 위원장)는 자연을 절대화하고 인간 존엄을 그 아래에 두려는 ‘극단적 생태중심주의’를 반대하고, 환경을 금전적 손익 계산 대상으로 삼거나, 환경을 보호한다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노동자의 권리와 생존에 아무 관심이 없는 비인간적 시장 경제도 반대한다면서,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찬미받으소서' 내용을 들며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설명했다.그는 “새롭게 일어난 노동 문제에도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은 매우 부족하다”며, “기후 위기와 노동 문제는 결코 별개 문제가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한 문제이며, 동시에 함께 풀어야 하는 인간 생명의 문제다. 기후와 노동의 공통분모는 바로 인간이기에 새로운 고통 앞에 결코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석탄발전 노동자’에게 일할 권리와 기후 정의는 무엇인가?“석탄화력발전소는 ‘기후 악당’이 됐다. 수많은 노동자가 발전소 굴뚝을 보면서 아버지로서의 자존심, 전력 생산 노동자로서 자부심으로 가득했지만, 그런 발전소를 스스로 끄려고 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상당히 힘들 것이고, 노동자, 노조만이 견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함께 토론하고 이야기한다면 그 시기는 앞당겨질 것이다.”첫 발표를 한 이태성 간사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26년 일했고, 청년 시기부터 50대 중반이 된 지금 일자리가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그는 정책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 과정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가장 아래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과 정책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에 대해 발표했다.그는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발전소 노동자들에게 위기를 넘어 재앙이 됐지만, 모두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그 과정은 정의로운 전환으로 함께 만들어야 한다. 기후 악당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과정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의 피해, 그들의 삶까지 멈출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계속 일하고 싶다는 요청을 하고 있지만, 원청은 고용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자신들의 의지가 아니라 국가 정책에 따른 것이라는 이유”라면서, “결국 책임은 정부에 있다. 공기업, 하청 업체와 정부는 서로 책임을 떠밀며, 단지 취업 알선과 재교육을 제시하는 폭력을 자행한다. 우리는 구걸이 아니라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7일 주교회의 정평위 노동소위가 '기후위기 그리고 노동의 미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정현진 기자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74퍼센트 폐쇄 동의
지역 소멸, 에너지 공공화 문제
이태성 간사는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기후위기와 그에 대한 시민적 책임을 인식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들의 45퍼센트인 하청노동자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면서, “취약한 고용 구조 속에서 발전소 민영화는 결국 노동자들 각자도생의 장이 될 것이고, 이해 구조 안에서만 운영될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각 주체 간 대화가 단절됐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소 도시에 있는 발전소는 지역 의존도가 높다. 현재 예정된 28기 발전소를 폐쇄하면 75조 원 경제 피해와 2만 5000명 해고 노동자가 생겨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에 지역 소멸도 예측할 수 있다.
이태성 간사는 기후 위기, 노동권, 지역 발전 등 복잡한 문제가 맞물린 문제에 대해 사회적 대화 기구가 마련되지 않은 것이 큰 문제라면서, 다양한 시민 주체를 포용하는 기구가 필요하고 이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등을 가지고 있는 충남도는 이러한 위기 의식을 바탕으로 2022년 ‘정의로운 전환 기본 조례’를 만들고, 지역 공론화,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다양한 주체가 직접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 간사는 태안 지역 발전소 노동자들은 “스스로 정의로운 전환을 만들고 싶다”는 입장이며, “그 과정에서 승자 독식, 돈으로 모든 것을 도구화하는 체제 전환의 주체가 되고자 한다”면서,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 구조 전환,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노동을 비롯한 전체 산업 구조를 정의롭게 바꾸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현재 재생에너지 사업의 공공성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현재 재생에너지 사업의 90퍼센트 이상을 해외 자본과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면서, “국부인 전기를 해외 자본에 맡기게 되는 문제가 있다. 재생에너지 사업의 공공성 보장 역시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에너지의 공공성을 비롯한 공공성 강화, 재공영화 역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장이며, 공영화를 통해 정의로운 전환을 이뤄야 한다면서,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노동을 거부하고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싸우겠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한 주체로서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 구조 변화는 노동 시장 변화”
핵발전과 태양광의 잘못된 대립 구도
“노동과 기후를 연결하는 것이 어렵다면, 복지와 기후를 연결해 보자. 과거 복지 재원을 만들기 위해 경제 성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최근 복지 분야에서는 생태적 한계를 존중하면서 복지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노동자, 노동 조합 역시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존중하면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이어 김병권 자문위원은 ‘기후 대응과 산업 구조의 전환’ 문제를 짚고, “탄소 집약 산업에서 탈탄소, 녹색 산업 전환은 시장 논리가 아니라 기후 위기에서 국민을 지키기 위한 국가 정책”이라며, “정책적 산업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노동자, 지역이 있다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석탄화력 폐쇄는 폐쇄로 종결된 과거 광산 폐쇄와 다르며, 전력 공급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전력 사업은 계속돼야 한다. 전력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에 석탄화력이 폐쇄되면 더 큰 규모의 전력 사업이 만들어져야 하지만, 폐쇄는 확실하고 다른 전력 사업은 불투명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자문위원은 한국의 딜레마는 핵발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핵발전이 없으면 에너지 전환을 성공할 수 없다고 보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해 연말, 110여 개국은 2030년까지 태양광, 풍력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생산 규모 2배를 약속했다. 한국은 대부분 선진국이 핵발전을 줄이는 결정을 하고 있는데도 지나치게 핵발전에 호의적”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녹색 산업 경쟁이 치열한 주요 국가들에 비해 한국은 녹색 산업 정책이 없고, 그것이 초래할 위험이 크다. 에너지 정책 역시 녹색 수소가 아니라 ‘회색 수소’ 위주다. 그는 특히 대규모 전력이 필요한 인공지능 사업도 부담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특별한 관련 정책이 없다고 했다.
기후 운동이 노동 운동과 함께 갈 수 있는가?
노동은 성장 동맹의 일원인가, 탄소중립 동맹의 주체인가
마지막으로 기후 운동과 노동 운동의 연대 중요성을 말한 박태주 연구위원은 “노동 운동과 기후 운동은 정체성이나 지향, 조직 구성, 운영 방식의 차이가 있다. 노동 운동이 이해 지향적이라면, 기후 운동은 가치 지향적”이라며, 노동 조합과 기후 단체는 정치적 전망이나 개혁 비전을 공유하지 못하고 개별 운동으로 존재해 왔기 때문에 때로는 반목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대는 다름을 전제로 상대방의 빈틈을 채우려는 노력이며, 상대방을 인정하고 공동의 가치를 발견함으로써 시작된다”며, “그렇다면 노동 조합은 기후위기 해결을 자신의 의제로 받아들이고, 기후 운동은 정의로운 전환, 특히 일자리 보장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노동 조합이 기후 단체와 연대해 사회적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기후단체 역시 노동 조합의 힘을 동원할 수 있다. 기후-노동 연대는 체제 전환을 위한 주체의 설정과 전략, 이행안 설정을 가능하게 하고, 전환 실현 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죽은 행성에는 일자리도 없다
노동, 기후 서로 회의적 시선이 걸림돌
그는 ‘노동-기후 연대’의 걸림돌은 서로의 입장을 비난하는 회의적 시선에 있다면서, “환경 운동은 자연에 피해를 끼치는 것과 상관없이 일자리를 지키려 한다며 노동 조합을 비난하고, 노조는 반대로 노동자들의 일자리, 생존 필요를 자연의 뒷전에 놓는다고 비난한다”고 설명했다.
박태주 연구위원은 “석탄화력발전소가 탄소를 배출한다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낙인찍을 일이 아니듯이, 휘발유, 오토바이로 아스팔트를 달려 배달하는 노동자를 비난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며, “노동자의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본가의 책임과 같은 무게인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효 수요가 생산을 이끄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또 현재의 노동 운동에 대해서는 “정의로운 전환을 넘어 노동 운동의 녹색화, 녹색 노동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녹색 노동 운동은 기후위기 해결과 일자리 보장을 상호 충돌하는 쟁점이 아닌 통합적 쟁점으로 바라보는 일이며, 노동이 참여하는 탄소중립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이다. 또 환경과 고용의 딜레마를 넘어 노동 정책은 물론 기후 정책과 산업 정책의 이해 당사자로서 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노동기구는 ‘녹색 일자리’를 “녹색 산출물(상품, 서비스)을 생산하거나 환경친화적 생산 과정을 갖는 ‘괜찮은 일자리’라고 규정한다.
박 연구위원은 “이러한 녹색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과 동시에 그 일자리가 비정규직이나 해고가 쉬운 노동으로 채워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산업 전환을 녹색 산업 기반으로 구축하고, 에너지 전환과 녹색 리모델링, 대중교통 확충, 산업 탈탄소화, 필수 공공서비스 확충과 돌봄 노동 강화, 노동 시간 단축, 일자리의 질 높이는 일이 녹색 일자리를 현실화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후위기를 해결하면서 불평등 해소를 겨냥하는 것,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생이 전가되는 것을 막고 이들을 기후위기 해결 주체로 세우는 것, 일자리 보장과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지점에서 탄소 중립과 일자리 창출, 불평등 해소가 극적으로 만난다”면서, “정의로운 전환이든 기후 정의든, 노동과 기후 연대는 그 가운데에 중심이다. 노동과 환경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전환의 주체가 만들어지고 전환을 위한 이행안 설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regina@catholicnews.co.kr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s://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