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동자 23명이 배터리 폭발 화재로 목숨을 잃은 화성의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에게 검찰이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2022년 1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 최고의 구형량이다. 박 대표쪽은 마지막 공판까지 ‘실질적인 경영책임자’가 아니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윤추구 혈안돼 불법파견 노동자 위험 내몰아”
“위험 외주화 전례 보기 힘든 사건, 응분 책임”
수원지법 형사14부(재판장 고권홍 부장판사) 심리로 23일 열린 박 대표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산업안전보건법 위반·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혐의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박 대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지난해 6월 사고가 발생한 지 1년1개월 만이자 같은해 9월 박 대표가 구속기소 된 지 10개월 만이다. 검찰은 “(박 대표가) 명백한 증거에도 범행을 부인하고, 형사책임을 면하기 위해 아들(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에게 책임을 전가했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박중언 총괄본부장에게는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박 총괄본부장에 대한 구형량 역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에서 역대 최고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아리셀 임직원 4명에게는 각각 징역 3년, 금고 1년 6개월~3년을 구형했다. 파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인력파견업체 한신다이아와 메이셀의 실질적 경영자인 정용환씨에 대해선 징역 3년을 구형했고, 건축법 위반 혐의를 받은 건설업체 대표에게는 벌금 1천만원을 구형했다. 아리셀 법인과 한신다이아·메이셀 법인에는 각각 벌금 8억원과 벌금 3천만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아리셀 참사를 ‘역대 최악의 인명피해’라고 규정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은 이윤 추구에만 혈안이 된 전기 제조업체가 국가를 속여 불량전지를 납품하고 불법파견으로 숙련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최소한의 안전시스템도 구축되지 않은 위험한 작업장에 내몰아 23명의 고귀한 생명을 빼앗아간 중대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생명을 경시하고 위험을 외주화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번 사건에 대해 피고인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게 해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해 법을 준수하고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책임져야 할 사업자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할 사회적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박순관 대표쪽, 여전히 경영책임자 부인
“위험의 외주화 쉽게 재단? 공감 어렵다”
박순관 대표쪽은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경영책임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김춘호 변호사는 최후변론을 통해 “적어도 아리셀에 대해선 박중언 총괄본부장이 경영책임자이고,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던 사람이라고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대표가 박중언 총괄본부장에게 SNS나 이메일을 통해 업무를 보고받은 증거는 이날 재판에서도 여러 건 공개됐다. 검찰은 등기부등본상 아리셀 대표이사이자 모기업 에스코넥 회장인 박순관 대표를 실질적인 경영책임자로 특정했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검찰 주장에도 적극 반박했다. 박 대표쪽은 “아리셀은 설립 때부터 사고 발생 직전까지 매년 30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었다”고 했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파견근로자를 고용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정규직과 파견근로자가 받은 급여는 거의 차이가 없다”며 “한국인 근로자들이 구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파견노동자를 사용했는지는 기록에 다 나와 있다. 이 사건이 이렇게 쉽게 (위험의 외주화로) 재단될 수 있는 것인지 공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김병철 연구소장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박중언 총괄본부장은 지난달 재판에서 전지 발열 검사의 생략을 김병철 연구소장이 결정했다는 취지로 진술해 논란이 됐다.
유족 격앙 “사람 죽여놓고 책임 없다니”
피해자 호명한 유족 대리인 “무거운 벌 간절”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박 대표쪽의 최후변론이 이어지자 방청석에 앉은 유족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유족들은 “김앤장 변호사 똑바로 하라” “사람 죽여 놓고 책임이 없다니” “내 새끼 살려내라”라며 오열했다. 마스크를 쓴 채 피고인석에 앉은 박 대표는 이마에 손을 대고 고개를 숙였다. 박 대표쪽 변호사는 정면만 응시했다.
구형에 앞서 아리셀 참사대책위 법률지원단인 손익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피해자들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사망자 스무 분의 이름이다. 꽃다운 나이에 숨진 스물세 분의 영혼이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도록 피고인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총괄본부장에게 반드시 무거운 벌을 내려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회사와 합의하지 않은 4명의 유족들도 발언했다. 언니와 함께 숨진 유족의 배우자는 “이번 사고 이후 장모가 돌아가셨다”며 “가족 3명을 잃은 셈”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동료를 구하러 가다가 목숨을 잃은 김병철 연구소장의 아내 최현주씨는 “(박 대표는) 합의하면 사과한다고 했다”며 “이제 사과하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판결할지 죽는 순간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아리셀 참사는 지난해 6월24일 공장에서 리튬전지에 불이 붙으며 발생한 화재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검찰 조사 결과 아리셀이 군납 기일을 맞추려고 무리하게 목표 생산량을 늘리고 인력파견업체 메이셀로부터 비숙련 이주노동자를 대거 불법파견 받고도 안전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수사단계에서 처음으로 경영책임자로서 구속됐다. 박 대표와 그의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은 지난해 8월28일 구속됐고, 9월24일 구속기소 됐다. 그해 10월21일부터 재판이 시작돼 이날까지 23차례 공판이 진행됐다. 박 대표는 진행 도중인 올해 2월 보석으로 석방됐다. 1심 선고는 9월23일 진행될 예정이다.
홍준표 기자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