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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신발을 신고

노동사목위원회

그의 신발을 신고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현재는 회계업무를 하고 있는 이지연 솔렌지아라고 합니다. 글을 쓰려고 앉아 제가 하는 노동을 들여다보니 어느 신부님과 했던 면담이 떠오릅니다.

 

 “솔렌지아는 좀 더 활동적인 일을 하면 훨씬 더 잘할 텐데 회계하는 일이 힘들지 않니?”
 “어렵고 재미도 없어요ㅎㅎ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항상 가지고 있고요. 근데 지금 그런 일을 못하고 있다 생각하면 마음이 힘드니까 위원회에 함께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드린다고 생각하며 일해요.”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데...”

신부님께서 제 마음을 헤아려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기까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좋고 내가 그들을 도울 수 있다면 행복하고 보람을 느낄 것 같아서 사회복지를 전공했습니다. 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라 느꼈습니다. 다양한 사람까진 좋았는데, 다양한 업무라고도 보기 힘든 전공과 동떨어진 회계를 하게 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회계 업무에 적응하며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잡는 일이 더욱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회계는 대상자를 직접 돕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과 가만히 앉아 서류를 만들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기운이 나지 않았습니다. 지인들을 만나 하는 일을 소개할 때에도 이주민과 함께하고 그들을 돕는 일이라 말할 수 없었고, 서류하나, 숫자 하나에 버벅거리는 나를 회계라고도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힘들어만 할 순 없으니 저는 한동안 예전에 겪었던 두 가지 에피소드를 매일 되새겼습니다. 그중 하나는 첫 직장을 그만두고자 결심했을 때 마음입니다. 첫 직장에서 만난 분들은 모두 좋은 분들이었고, 일도 사회생활도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는 나에게 지금 하고 있는 반복적인 일 외에 더 맡기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고, 나는 더 이상 발전이 없겠다고 생각되어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나에게 주어진 회계라는 일을 어느 수준까지 해낸다면 거기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분명 더 발전해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또 하나는 고등학생 때 어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저는 주일학교 성가대 반주자였는데, 성가대 친구들과 주일학교 선생님들 모두 내가 힘든 것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엄마 앞에서 울면서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해서 그 일을 하게 됐을 때 기쁘다고 했었어. 그리고 주님께서는 필요한 자리는 꼭 채워주시기 마련이야. 반주자가 필요하면 네가 아니어도 꼭 채워주실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그 자리를 너로 채워주심에 감사해야지. 너무 속이 상해 순간 잊을 수 있지만 차분히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구나.” 

 

저는 그때 정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세상 살아가는데 힘들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어머니 말씀대로 힘들고 속이 상해 순간을 잊는 날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 가지 에피소드를 지금도 자주 되새깁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를 생각하며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두 번째 에피소드를 생각하며 이 일을 하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회계라는 일은 누군가를 도울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내가 만나는 신부님, 수녀님, 직원들과 함께하고 그분들을 돕는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순간을 잊는 날이 반복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되새겼던 마음을 잊지 말고 하루하루 기쁘게 일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글을 마칩니다.

이지연 솔렌지아
천주교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