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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담긴 비밀

노동사목위원회

손에 담긴 비밀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인사하시나요? 반가운 이들을 만났을 때, 저는 주로 악수를 하는 편입니다. 물론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상대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기에 다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겹고 힘 있는 악수는 타인에 대해 반가움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타인과의 악수 안에서 저는 상대방의 따뜻한 마음과 힘찬 격려, 그리고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간접적으로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반가운 이들을 만나면, 여러 인사말보다는 묵직하고 힘 있는 악수를 더욱 선호하는 편입니다.

<필리핀에서 선교 중인 김홍식 신부님>

 

본당에서 성체 분배를 할 때마다 신자들 손을 바라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깨끗하고, 깔끔해 보이는 손도 많았지만, 늘 제 기억에 남아있는 손은 딱딱한 굳은살이 박혀 있는 노동자 손이었습니다. 주부습진으로 고생하는 어머니 손, 밭일을 한 뒤 묵은 때로 가득한 할머니 손, 기름때와 온갖 상처들로 가득한 아버지 손을 자주 보았습니다. 손은 사람이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살아온 노동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우리 "손"입니다. 이렇게 손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두게 된 배경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늘 일찍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늦은 밤 퇴근하고 집에 오신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먼저 잠들어있는 아들 얼굴을 어루만져 주셨지요. 제 피부로 느꼈던 아버지 손은 언제나 거칠었습니다. 아버지 손 마디마디에 새겨진 굳은살은 일 년 내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늦은 저녁 아버지께서 방에 들어오시면, 저는 아버지께서 보내셨던 그 하루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거칠어진 손뿐만 아니라, 아버지 몸에서 났던 독특한 냄새 때문이었습니다. 고된 노동을 마친 아버지 몸에서는 늘 땀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밭일하고 오신 날이면, 거름 냄새와 풀냄새가 가득했었지요. 거칠어진 아버지 손을 접하고, 그리고 아버지 몸에서 나는 땀 냄새를 맡은 것이 제 인생에 있어서 "노동"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저에게 노동을 몸소 보여주셨고, 때론 직접 가르쳐주기도 하셨습니다. 하루는 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며 어느 대학교 교정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때 저는 사제직을 준비하는 신학생이었지요. 저는 아버지께서 시키는 대로 대학교 교정 구석구석을 돌면서, 커다란 쓰레기 봉지 더미를 1t 트럭에 옮겨 실었습니다. 금세 아버지의 트럭은 쓰레기로 가득해졌고, 저의 몸에서도 쾨쾨한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대학교 구석에 마련된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가서 아버지와 함께 쓰레기를 정리하였고, 저를 이곳으로 부르신 이유를 듣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대학교 교정 안에도 이렇게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노동자"가 있다는 것을 저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훗날 사제가 되거든, 이렇게 가장 힘들게 일하고 계시는 분들을 먼저 돌보고 관심 가져야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이런 아버지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길을 가다가 쓰레기 정리를 하고 계시는 분들을 마주치면, 왠지 모르게 그분들에게 정이 가고,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동시에, 노동이라는 인간의 행위에 고귀함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사제로 서품을 받을 때, 저는 서품 상본에 서품 성구인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루카 4.18)이라는 문구와 함께 "악수하는 손"을 그림으로 넣어두었습니다. 이 그림은 깨끗하게 다듬어진 청년 손과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노동자 손이 서로 맞잡고 있는 그림입니다. 사제로 살아가면서 저는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 특별히 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그 그림을 새겨두었습니다. 물론 저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의 손을 잡아주었는지 성찰해보면 늘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손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때론 우리 손이 거칠고 투박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상처로 가득한 노동자 손을 더 사랑하고, 또 그분들 삶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거칠어진 손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노동의 흔적이요,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헌신의 증거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지쳐 있는 오늘날이지만, 우리 주위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손을 다시 한 번 따뜻이 잡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필리핀에서 성실히 공부하고, 또 제가 만나고 있는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그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며 살아가겠습니다.

김홍식 베드로 신부
대구대교구 필리핀 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