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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공정’과 예수님의 ‘공정’

노동사목위원회

우리 시대의 ‘공정’과 예수님의 ‘공정’


<출처: university of waterloo>

 

  공정의 사전적 의미는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면 ‘비례성’과 ‘형평성’이라 할 수 있다. 공정은 비례적으로 공평해야 하고 형평적으로 정의로워야 한다는 뜻이다. 공정을 구성하는 서로 다른 두 가치, 비례성과 형평성 중 어느 가치에 더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한 개인 또는 사회의 공정에 관한 관점과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공정의 문제로 우리 사회가 논란 중이다. 주로 개인의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한 비례적 정의를 강조하는 사람들과 약자에 대한 배려와 평등적 정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의 의견 대립이 그 합의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정의 문제는 고용과 노동시장에서뿐만 아니라 대학입시에서도,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 등 금융시장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졸지에 벼락거지 문제가 불거진 부동산 시장에서도, 우리 사는 곳곳에서 치열한 논쟁 중이다.



<출처: mostly AI>

 

공정의 문제는 가치 판단의 문제이고 선택의 문제이므로 정답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갑인지? 을인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부자인지? 가난한 자인지? 부동산(아파트)이 있는지? 없는지?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에 따라 공정의 잣대는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공정의 기준과 잣대가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우리 천주교 신자들의 공정을 대하는 태도와 입장은 어떠해야 할까? 아직 신앙이 없는 비신자가 보는 ‘공정’과 천주교 신자로서 보는 ‘공정’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예수님은 공정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고 계실까? 공정에 대한 신앙인의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묵상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이다. 포도밭 주인은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임금을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는 또 아홉 시와 열두 시, 오후 세 시쯤에도 일꾼을 샀다. 마지막으로 오후 다섯 시에 일꾼을 사서 포도밭으로 보냈다. 일이 끝나자 포도밭 주인은 관리인을 시켜 임금을 지급했다. 가장 늦게 일을 시작한 일꾼부터 임금을 주었는데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을 주었다. 새벽부터 일한 일꾼은 임금을 가장 늦게 받고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만 받았다. 일을 일찍 시작한 일꾼일수록 불만을 품은 건 당연해 보였지만 포도밭 주인은 그들의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흐, 아를의 붉은 포도밭>

 

 능력과 수고에 비례한 보상이 공정의 최고 가치라면 예수님의 비유는 언어도단이고 악덕 사업주 중에서도 이런 악덕 사업주는 없을 것이다. 예수님 시대의 한 데나리온은 하루 일하면 받게 되는 일당액을 말한다. 포도밭에 필요한 일꾼 전부를 한꺼번에 새벽부터 일을 시키면 포도밭 주인의 이익은 가장 크다. 그렇지만 포도밭 주인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 포도밭 주인은 선택받지 못해 일감을 얻지 못한 일꾼들을 꾸준히 시간마다 찾아 나선다. 먼저 선택받은 일꾼은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다. 무능력해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환경과 여건이 좋지 않아, 자의든 타의든 결국 선택받지 못해 실업자로 내몰린 일꾼들을 마지막까지 구원하시겠다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법이고 이 비유의 목적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신앙의 신비는 약자에 대한 우선 배려다. 세속적인 이익과 공정, 합리성과는 다른 차원의 선택이고, “선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더 좋아하시는” 예수님의 공정이다. 공정의 또 다른 가치 ‘형평성의 올바름’, ‘평등적 정의’ 측면에서 보면 이 또한 공정이다.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는 공정의 판단에서도 예수님의 말씀과 실천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 그 기준은 오로지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약자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우선적인 배려와 사랑의 마음이다. 오늘날 우리로 치면 새벽부터 일하고 있는 산업화 시대의 일꾼들이 있고, 9시부터 일하고 있는 386(지금은 586) 세대도 있고, 12시부터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고, 오후 3시부터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도 있다. 아직 오후 5시가 되지 않아 여전히 부름을 기다리는 2030 MZ세대도 있다. 우리 신앙인은 예수님께서 그랬던 것처럼 가장 나중에 부름을 받은 약자에게 먼저 보상하고 똑같이 배려해야 한다.



<출처: citywise>

 

 공정의 문제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에 예수님이라는 나침반은 큰 혜안을 주신다. 더구나 마음이 완고해져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쉬운 비유로 말씀해 주시고 있지 않은가? 가치 기준이 돈과 이익이 되어버린 우리 시대에 더욱 실천하기 어려운 계명이 예수님의 공정, 즉 사랑과 배려임을 깨닫는 지혜와 용기를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 주실 것을 주님께 기도드린다.

 

박영기 노무사
노동사목위원회 상임위원 · 한국공인노무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