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사랑
우리 인류의 업보로서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 코로나 팬데믹은 벌써 2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 세대에 가장 비현실적이기조차한 상황은 이제 일상이 되어간다. 인류가 근대 이후 왜곡된 도구적 합리성의 집착으로 빚어낸 생태환경의 지속성 위기는 이제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기회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코로나가 인류에게 귀띔해주는 가장 큰 학습의 기회는 ‘노동의 의미성’에 대한 성찰이다. 팬데믹을 통해 우리는 뜻하지 않게 마침내 정주하는 삶을 경험하게 되었다. 무한 질주의 숨 막히는 경쟁 사회로부터 갑자기 정지된 화면처럼 원격근무 환경 안에서 우리는 가정과 시간을 더 보내고, 불필요한 화석연료를 소모하지 않으며 해외 출장을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직장을 잃거나 감염병으로 격리되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삶을 잠시 멈추고 각자의 삶을 되짚게 하는 아픈 기회다.

<출처 The Economist>
코로나 시대를 통해 겪게 되는 무력감 안에서 많은 사람이 각자에 맡겨진 노동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많은 경우 회의감을 가지며, 실제로 이직 의사가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는 흥미롭다. 특히 팬데믹에 기인한 원격근무 환경 안에서 이직에 드는 비용은 감소하므로, 노동자는 좀 더 의미 있는 일이 있는 직장을 향해 쉽게 떠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회사로서도 근로자가 원하는 근무 환경을 갖추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정주하는 삶 가운데 우리는 각자의 노동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얻는다. 직장에서의 일과 함께 가정에 헌신하는 의미에 대하여, 나의 노동이 가지는 공동체적 가치에 대하여,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직장에서의 노동이 각자의 삶의 의미성에 통합되어 있는지를 묻게 된다. 그렇다면 의미 있는 노동이란 무엇인가? 노동의 의미성은 각자 개인의 사적 영역이다. 직무만족도와 같은 일반적인 직무 태도와는 다른 차원이다. 노동의 의미성은 각자의 성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노동과 자기 삶의 사적 영역을 분리하지 않고 결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 공동선, 형제애 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가 의미성을 지향하는 키워드일 것이다.

<출처 : Deloitte>
우리가 일의 의미성을 깨닫게 되는 것은 어떤 계획된 프로그램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의 대개는 뜻하지 않는 특별한 순간에서 비롯된다. 특별한 순간은 반드시 기쁜 경우만이 아닌, 슬프거나 참담한 상황에서도 불현듯 찾아온다. 원격근무로 찾아온 자유로운 생활에서도, 그리고 정든 사무실을 떠나게 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통해서도 깨어있음의 순간을 우리는 맞이하게 된다.
뇌신경학에서 제시하는 신경가소성은 성장과 재조직을 통해 뇌가 스스로 신경 회로를 바꾸는 능력이다. 이는 어떤 유전자형의 발현이 특정한 환경 요인을 따라 특정 방향으로 변화하는 성질을 가리킨다고 한다. 인류가 당면한 팬데믹으로 인류의 의식이 진화할 수 있는 과학적 설명이기도 하다.
코로나 팬데믹의 한가운데 정주하는 삶에서의 성찰 기회가 글로벌 복합위기와 함께 찾아온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노동과 삶이 더는 분리되지 않고, 각자의 삶의 목적 안에서 의미 있는 노동으로 통합될 수 있음은 우리 인류가 단절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통합적 세계관으로의 문명적 전환을 이루는 위대한 여정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비로소 인류는 스스로 인간생태계의 건강함을 회복함으로써 사회생태계와 자연생태계 등 통합생태계의 생명력을 기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출처 : morten hansen>
혼돈의 시대 가운데 팬데믹이 우리에게 선물한 정주하는 삶은 우리 각자의 노동과 삶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주었고 이제는 우리가 코로나 시대의 사랑을 실천할 숙제를 풀어야 할 때다.
박용승 스테파노 교수 (노동사목위원회 상임위원 | 경희대학교 경영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