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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미 추모 14주기를 맞아

노동사목위원회

[황유미 추모 14주기를 맞아]

일터의 중대재해를 막고, 노동자 건강과 인권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오늘은 황유미 님의 기일입니다. 삼성에서 일하다 백혈병이 발병한 유미씨는 2007년 3월 6일, 아버지의 택시 뒷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찾아온, 억울한 죽음입니다. 유미씨 기일을 맞아 그동안의 변화와 과제를 돌아봅니다.

 

“내 딸이 삼성에서 일하다 백혈병 걸려 죽었어요. 회사에 산재 처리를 해달라니까 500만 원으로 끝내자고 해요.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아버지 황상기 님의 호소로 2007년 11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 만들어졌습니다. 거짓말처럼 또 다른 제보들이 이어졌습니다. 삼성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젊은 나이에 아프고 병든 이유를 의심했고, 용기를 냈습니다. 산재 신청을 하러 근로복지공단에 찾았고 불승인 처분을 받으면 다시 법원에 이의제기했습니다.

 

그렇게 거듭된 산재 투쟁이 10년에 걸쳐 공단과 법원에서 벌어졌습니다. 백혈병, 뇌종양 등에 걸린 이유가 작업환경 때문임을 증명하라는데, 회사는 관련 정보를 영업비밀이라며 감췄습니다. 아픈 노동자가 증명해야 하는 불합리한 법 구조에도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2017년 이정표가 될 만한 중요한 대법원판결이 나왔습니다. 노동자 증명 책임을 바꿀 수는 없지만, 증명의 정도를 대폭 완화하라는 내용입니다. 이로 인해 근로복지공단에서도 인과관계 ‘추정의 원칙’을 도입하였습니다. 이제 직업성 암도 산재로 인정받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첨단 전자산업의 유해성도 드러났습니다. 깨끗한 이미지와 달리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독성 화학물질이 수없이 사용되고 방사선이 누출될 수 있습니다. 2019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10년 동안 실시한 집단 역학조사 결과, 반도체 산업 노동자들의 암 발병률이 높다. 이는 작업환경 때문으로 보인다”는 중요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의 방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삼성은 영업비밀 주장에 더해 작업환경 보고서의 안전보건 정보에 '국가 핵심기술이 포함되어 있다며 보고서 공개를 막더니, 급기야 국회의 힘을 빌려 작년에 산업기술보호법을 개악했습니다. 이제 작업환경측정 보고서 공개를 아예 법으로 금지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산업기술이 포함되어 있으면 안전 문제가 있더라도 공개할 때 처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반올림은 위헌소송을 제기했고, 잘못된 법을 바로잡기 위해 또 싸워나갈 것입니다. 알 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생명 건강권이 온전하게 보장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업재해를 부인해왔던 삼성을 비롯해 SK, LG 등 반도체, 디스플레이 대기업들은 기업 보상제도를 운영하고, 안전보건관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불충분한 기업 보상이 생색내기에 그치거나 산재 은폐의 수단이 되는 건 아닌지 주의가 필요합니다. 또 얼마 전 발생한 LG디스플레이 화학물질 누출 사고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기업들은 하청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합니다. 위험을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열악한 곳으로 전가시키고 있으니 원청에 대해 더 철저한 감시와 책임 묻기가 필요합니다.

올해 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일터에서 하루 6명씩 죽어가는 현실을 바꾸고자 만든 법입니다. 중대재해는 기업에 의한 조직적, 구조적 범죄임을 확인한 법이자, 그 원인을 제공한 원청, 경영책임자가 형사처벌을 받도록 한 법입니다. 아직 바뀔 것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이만큼 올 수 있었던 힘은 유미씨를 비롯해 수많은 산재피해 노동자들과 (유)가족들이 앞장서 싸워왔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삼성의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삼성의 악명 높은 무노조경영의 겨울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새봄다운 소식 같습니다.

유미씨와 함께 싸운 날들이 많은 변화 가져다주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남은 과제는 산 자들의 몫입니다. 일터의 중대재해를 막고 노동자 건강과 인권을 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부디 더는 걱정 없이 하늘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10년 넘게 거리에서 고생하신 유미씨 아버지 황상기 아버님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종란 노무사 |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