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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일자리보다 소중한 안전

노동사목위원회

임금, 일자리보다 소중한 안전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연구하고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발품을 판지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이들을 만났다. 자동차공장이나 조선소 같은 초대형기업에서 일하면서도 근골격계질환에 걸려 고생하는 노동자들, 환자를 돌보는 중요한 일을 하면서 맞거나 성희롱 당하는 간호사나 요양보호사들, 물류센터에서 가가호호 배달해야 하는 생필품을 포장하면서 추위·더위와 씨름하다 쓰러진 노동자들, 끝없이 추락해 사망하는 건설노동자들... 더 나열할 게 많지만 그러면 지면이 부족해질 거다. 

 

일은 누구나 하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도 하지만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도 한다. 모든 인간이 하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죽거나 다치거나 병에 걸린다면 안 되는 게 당연한 이치다. 그리고 위험한 일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현대 과학기술로 없앨 수 없는 위험은 없다고 과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에서는 한 해에 10만 명이 훌쩍 넘는 수준의 산업재해 피해자가 발생하고 이들 중 2천 명 이상 사망하고 있다. 그 결과 OECD 최고의 산재사망률이라는 기염(!)을 토하게 되었다. 그것도 OECD에 가입한 1996년 이래 계속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독자들 중에는 20년 동안 뭘 했기에 이렇게 변화가 없느냐고 질책하는 분이 계실 것 같다. 맞다. 부족했다. 그런데 그 부족의 원인을 짚자면 ‘노동’안에 ‘임금인상’이나 ‘고용안정’만 있었지 ‘안전·보건’이 없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주로 임금인상에 초점을 둔 투쟁을 이어왔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안정에 중점을 둔 투쟁을 진행해 왔다. 그 과정에서 ‘안전’은 화두가 되지 못했다. 그나마 최근에 와서 ‘주당 노동시간 52시간 상한제’가 도입되었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 저녁 뉴스에서는 절대 보도하지 않던 노동자 산재 사망이나 안전보건 이슈를 1개 이상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수치 상으로는 너무나 더딘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사실상 시민들도 일하는 사람들인데 일터에서의 위험을 인식하고 있을까? 없을 것 같다. 인식은 인지로부터 시작되는데 인지할 수 있는 구조가 없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도 않고 회사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나마 노조가 있으면 좀 다를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0% 정도여서 90%의 일하는 사람이 ‘알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그리고 언론에서도 ‘** 건설현장 인부 사망’ 정도로 하찮은 취급을 한다. 이 안에는 뼈속 깊이 새겨진 ‘산업전사’ 이데올로기가 숨겨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죽을 수 있다’는 의미다. 


내가 일하는 연구소에서는 이상한 일도 한다. 노동자 안전보건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나누어주는 운동교구(농구공, 야구글러브 등)를 구매해 성분분석을 한다. 분석결과 농구공에서 프탈레이드(내분비계장애 추정물질. 동물실험에서 골격 기형유발, 사망률 증가 등의 발달독성, 신장독성을 유발)가 기준치의 300배가 나왔다. 야구글러브에서는 납(체내에 축적이 되어 만성중독을 일으킴. 급성위장염 증세, 두통, 관절염, 뇌 증상 등을 나타냄)이 기준치의 20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를 보도자료로 냈다. 이후 난리가 났다.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가 온 것이다. 주로 학부모들의 전화였다. 해당 제품의 브랜드를 알려달라고 한다. 언론에서도 연달아 보도를 한다. 그런데 누구도 이 제품을 만드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농구공 만드는 회사가 대기업일리 만무하다. 조그만 공장일 것이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두 시간 농구공을 쓸 테지만 노동자들은 이 독성 가득한 원재료를 하루 8시간 이상 취급할 것이다. 이런 조그만 공장은 정부에서 감독도 안 한다. 우리는 우회하는 방향으로 소사업장 노동자를 보호하고자 한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본인의 업무를 돌이켜 보길 바란다. 과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면서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취급하고 사용하고 있는 일터 도구나 재료가 안전한 것인지를. 그리고 더 많은 소득과 고용안정도 중요하지만 노동력, 즉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는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인임(일과건강 사무처장,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