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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은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

노동사목위원회


돌봄은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


코로나19 감염병은 사회경제 전반과 우리 일상에 깊숙이 두려움과 불안을 몰고 왔다. 감염의 공포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답답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 고통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코로나 ‘이후’가 아니라 코로나와 ‘더불어’ 사는 삶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감염병은 우리 사회가 근본적 해결책보다는 땜질식 처방으로 대응했던 시장화, 불평등, 불안정, 차별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다른 한편,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음을 깨닫게도 하고 있다.

 

지금의 코로나19 위기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돌봄 노동이 일상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노동인지 새삼스레 부각시켰다. 학교 급식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식사 준비 시간을 아껴주고 있었는지, 외식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편안한 저녁 시간과 주말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는지, 어린이집과 학교 선생님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안심하고 일터에 나갈 수 있도록 해주었는지, 이전에는 몸으로 느끼지 못했다. 어느덧 공기가 되어 버린 가사와 돌봄 노동의 ‘사회화’에 짜 맞춘 일상이 틀어지자 모두 불편과 혼란을 겪고 있다. 아빠와 엄마 중 어느 쪽도 재택근무가 허용되지 않는 직장에 다닌다면, 긴급돌봄서비스나 아이를 돌봐줄 친인척이 없을 때 직장을 그만둘지 말지 고민하는 것은 엄마일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시간사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여성은 남성보다 하루 평균 2시간 17분을 더 많은 가사노동을 한다. 위기가 아니어도 여성은 가사와 돌봄 노동의 부담이 컸지만, 지금 시점에 같은 조사를 한다면 남녀의 가사노동 시간 격차는 이보다 더 벌어지지 않을까.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사진=영화 공식 포토

 

인간은 본질적으로 상호의존적인 존재이며 삶을 유지하기 위해 누구나 돌봄을 필요로 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진다는 복지국가는 사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제공하는 돌봄 노동 위에서 돌아간다.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은 마이너스 성장률에 주목하며 세계 경제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를 맞이할지도 모른다고 걱정이다. 성장률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시장에서 교환되는 재화와 서비스가 감소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 적자에 시달리다 폐업하는 자영업자들, 꽁꽁 얼어붙은 취업 시장에 나와 있는 청년들의 고통과 절망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시장이 멈추자, 시장을 통해 해결하던 많은 재화와 서비스 생산을 보상도 없이 떠맡게 된 우리 가족과 이웃의 고생도 적지 않다. 시장의 기능과 규모는 위축되었으나, 비(非) 시장 영역인 가족과 공동체의 기능과 활약으로 우리 사회가 그나마 지탱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사와 간호사, 아이돌보미, 장애인 활동지원사, 어린이집 교사, 학교/방과후 교사, 요양보호사와 같은 돌봄 노동자들도 지금 위기에 처한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고마운 분들이다. 우리나라처럼 국가가 장기요양보험제도, 보편/무상 보육, 저소득층 바우처 지원으로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여성들의 돌봄 부담을 경감시키는 정책을 추진하는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다. 보편적 사회서비스는 돌봄 노동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돌봄서비스를 공급하고자 낮은 수가를 책정했고, 민간위탁 기관을 통해 수요자와 매칭되어야 일자리가 확보되어 항상 일자리 불안에 시달린다. 돌봄 노동자들의 착한 마음과 취약한 경제적 상황을 볼모로 국가는 그들에게 공정한 대우를 하지 않았다. 이번 코로나19 위기에 시장이 멈춰도, 돌봄 노동자들은 감염병 전염 위험 속에서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여느 노동자처럼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에 쉽게 그만두지 못하기도 하지만, 돌봄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더운 여름, 현장에서 방호복 입고 땀 흘리며 일하느라 진이 빠진다는 간호사들과, 행여 바이러스 퍼질까 싶어 마음대로 에어컨도 틀지 못하는 곳에서 마스크 이외에는 보호장구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일해야만 했던 어린이집 선생님과 요양보호사들이 더 나은 근로조건을 요구하며 파업이라도 해버렸다면 어땠을까.

 

 

돌봄 노동은 일대일 접촉을 통해 상대방의 정서, 신체, 인지적 역량을 키우는 노동이다. 가족 구성원끼리 혹은 누군가에게 임금을 주고받는 돌봄이던, 돌봄 노동의 본질적 특성은 사람을 상대하는 ‘대면’ 활동이다. 사무실 업무, 수업, 회의 등 많은 활동이 비대면으로 옮겨갔지만, 돌봄은 대면으로 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연구가 축적되어야겠지만, 진정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염 확률과 속도가 남다르고 후유증과 치명률이 상당하며 이후에 또 다른 유사 바이러스가 등장한다면,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시대에 돌봄 노동은 가장 위험한 노동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돌봄 노동자가 되려는 사람이 줄지 않을까? 아무도 돌봄 노동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르신은, 그리고 늙어가는 나는 누가 돌봐 주나? 위험도가 높아진 만큼 충분한 보상이 주어질까? 아동과 노인을 집이 아니라 시설에서 돌보는 사회서비스 정책은 여전히 유효한가? AI와 돌봄 로봇이 빈자리를 메워줄까? 많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돌봄이 우리 사회의 든든한 기둥으로 서 있을 수 있도록 코로나와 더불어 살게 될 미래를 준비하자.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윤자영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