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 받는 우리 시대의 예수님은 누구인가?
1931년 5월 16일 평양 평원고무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일방적인 임금 삭감에 항의하기 위해 대규모의 단식과 파업 투쟁을 벌였다. 1929년 세계 대공항의 여파로 임금을 17% 삭감하기로 한 사업주 단체의 조치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성 노동자 강주룡은 평원고무공장 파업을 주도하다가 일제 경찰의 간섭으로 공장에서 쫓겨나 을밀대 지붕으로 올라가 목숨을 건 투쟁을 시작한다. 우리나라 최초 노동자 고공농성이라는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광목을 찢어 밧줄을 만들어 올라간 지상 12m 을밀대 지붕 위에 앉아 평양의 새벽을 가르며 “여성 해방, 노동 해방”을 목 놓아 외쳤다.
일제 강점기 여성 노동자는 민족별 격차와 성별 격차가 합쳐져 더욱 큰 고통을 받았다. 당시 조선인의 임금은 대개 일본인 임금의 반 정도였고 여성의 임금은 남성 임금의 반 정도였다. 고무공장처럼 여성 노동자가 집중되어 있는 업종일수록 임금 수준이 낮았다. 1929년 조선 내 공장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일본인 성년 남성 노동자가 2원 32전, 여성 노동자가 1원 1전인데 비하여 조선인 남성 노동자는 1원, 여성 노동자는 59전이었다. 임금 수준만 살펴보더라도 일제 강점기 가장 가난하고 고통받는 그 시대의 예수님은 일본인보다는 조선인, 조선인 중 남성 노동자보다는 여성 노동자라 할 수 있다. 을밀대에서 8시간의 고공농성을 벌였던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자이자 여성 노동자 강주룡은 이 사건으로 수감되었고 병보석으로 풀려난 지 두 달 만인 1931년 8월 13일,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예수님의 삶이 그랬듯이 평양 빈민굴에서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고공 농성 중인 강주룡>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죽음 후 40년쯤 되는 해인 1970년 11월 13일 한 명의 남성 노동자가 세상을 떠난다.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의 나이인 22살 청년 전태일은 자신의 삶을 불꽃처럼 태운다.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기획했지만 이마저 경찰의 방해로 무산된 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법이었기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탄원이 무산되자 자신의 몸과 함께 근로기준법을 화형 시킨다.

<가운데 전태일 열사>
일제 강점기 강주룡이 그랬던 것처럼 전태일 열사 또한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외면하지 못했다. 전태일이 잘 나가던 미싱사를 그만두고 재단보조로 취직한 이유는 재단사가 되기 위해서였다. 재단사는 공장의 이인자였고, 사장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 ‘여공’이라 불리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태일의 눈에 밟힌 ‘여공’들은 허리도 펴지 못하는 다락방에서 침침한 형광등 아래 점심도 거르고 마음 편히 화장실도 못 가는, 별을 보고 출근하고 별을 보며 퇴근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의 어린 여성 노동자, 그 시대의 예수님이었다.
강주룡의 죽음 이후 90년, 전태일의 죽음 이후 50년이 지난 오늘의 상황은 어떠한가? 고공농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삼성해고자, 파인텍, 영남의료원, 대우조선, LG헬로비전, 경산 택시노동자 등이 공장 굴뚝이나 다리 위, 타워크레인 등 우리 시대의 ‘을밀대’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여왔다. 작년 산업재해로 사망한 근로자는 2020명이다. 평균으로 따지면 매일 6명의 노동자가 직장에서 죽어가고 있다. 올해 산재 사고 사망자가 늘고 있는 건 큰 문제다. 1분기 사고 사망자는 25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명(5%) 증가했다. 사고 사망자 절반이 건설업에서 발생하는 상황도 여전하다. 1분기 건설 현장에서 131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매년 100명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는데 대부분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발생한다.
강주룡과 전태일, 본인들마저 가진 것 없고 힘없는 노동자였으나 그들의 시선과 행동만큼은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든 가난한 노동자, 어린 ‘여공’에 맞춰져 있었다. 예수님의 새 계명인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를 실천한, 오히려 자신의 몸보다 가난한 노동자를 더 사랑한, 가장 큰 계명을 몸으로 실천한 ‘익명의 그리스도’가 그들이다. 오늘 우리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 시대 예수님은 누구인가? 우리 시대 강주룡과 전태일은 누구인가?
한국공인노무사회 회장 박영기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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