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보고서>
“김천 도로공사 본사를 다녀와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이주형(세례자요한) 위원장 신부
▢ 직접고용이 불가하다는 도로공사의 논리
대법원은 2019년 8월 29일 확정판결을 통해 수납 노동자들에 대한 한국도로공사의 불법파견을 인정하였고, 이들에 대해 직접고용 의무에 대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도로 공사 고위 간부가 수납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요구는 부당하다는 논평을 하였다. 논점은 ‘노사 및 전문가협의회’를 통해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에 합의와 전환이 끝난 데다, 6,514명의 노동자 중 5,097이 자율적으로 ‘한국도로공사 서비스’라는 자회사 설립에 동의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농성중인 1500여명을 직접고용 할 시 이미 자회사를 선택한 나머지 수납 노동자들과의 고용 형평성에도 문제가 된다는 점을 들었다. 겉보기에 그럴듯한 이런 주장의 허점은 무엇일까?
▢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자율적 합의에 따라 자회사로 갔다는 주장에 대해, 2008년부터 외주화가 시작된 수납업무 노동자들은 외주화 정책으로 인해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경우도 있으나 반대로 정규직으로 입사했음에도 비정규직의 신분으로 전락하였다. 이들은 매년 계약 연장을 위해 노심초사해야했으며 사실상 200만 원가량의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근무를 했다. 그런데 자회사 설립이 발표되던 지난 6월 30일, 이들에겐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왜냐하면 당장 한달의 월급만 들어오지 않아도 삶이 불가능한 중위계층 이하의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사가 회유하는 자회사 전환과 불투명하고 살벌한 파업 투쟁 중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직접고용이라는 이상적 목표가 아닌 현실적 생계를 궁여지책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판을 짜놓고 몰아가기 식으로 일을 만든 도로공사는 갑의 입장에서 수납노동자들을 자회사로 강제 편입 시킨 격이다.
둘째로, 자신들의 불법 파견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파견노동을 제공하였다. 도로공사는 외주화만 했지 파견허가를 받지 않았으며 따라서 수납노동자들은 도로공사의 지휘감독과 구체적 업무지시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는 약점으로 인해 온갖 갑질과 어려움으로 고통을 받았다. 다행히 대법원은 불법파견을 인정함과 동시에 사용자와 노동자 간 업무 간 지휘종속 관계가 확인된다면 해고나 사직을 한 이후에도 그 직접고용 관계가 성립됨을 새로이 판시했다. 요컨대 2013년 이래 6년간의 법정싸움 끝에 수납노동자들이 자회사로 갔건, 정리해고가 되었건 이들은 도로공사의 정당한 노동자라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그러나 불법파견이라는 잘못을 저지르고 정규직 전환은 고사하고 꼬리 자르기 식으로 노동자들을 자회사로 내몰고 그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자회사를 선택했다고 본질을 호도하며 이른바 ‘노노갈등’만을 부추기고 있다. 또한 이번에 직접고용 판결을 받은 이들만 직고해서 청소나 환경미화를 시키는 것도 모자라 나머지는 그 기나긴 소송과정을 통과해야만 직고를 고려하겠다고 말한다. 후안무치와 표리부동이 아닐 수 없다. 추가소송을 언급하는 자체도 현재로서 전혀 무의미하다. 사건의 본질은 불법파견이며 대법원이 그에 대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셋 번째로 도로공사는 자회사가 수익성이 많고 유망하다는 낙관론을 내놓는다. 따라서 자회사는 결코 비정규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도로공사가 자회사 경영에 관여할 수 있어도 책임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한국도로공사서비스는 비정규직의 연장일 뿐이다. 또한 이미 ‘스마트톨링’이 수년 내로 상용화될 거란 전망이 농후하고 향후 수납업무 자체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결국 자회사 전환은 구조조정의 수순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으며 이는 불법파견을 회피하고 직접고용을 하지 않으려는 책략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도로공사의 경영에 대한 막중한 책임과 무거움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드러난 자신들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수납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는 것을 과연 옳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모든 국민들이 이 사태를 보고 있는데 진실을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가? 시대의 지성과 양심이 이런 상황에서 방관하고 침묵할 거라 여기는가?
▢ 철저한 차단
필자는 어제 (9월25일) 김천 도로공사에 방문을 갔었다. 수십 층 화려한 도로공사 본사는 현재 수백 명의 경찰병력이 건물을 에워싸고 있었다. 250명의 여성이 감금되었다고 표현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하여튼 스님과 목사님, 필자를 포함한 20여명의 종교인들은 그날 농성장을 방문하여 그들과 간단한 종교예식을 할 것이라 사전 협의 조율하였다. 그런데 그 앞에서 경찰들과 실랑이를 해야만 했다. 종교인 20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사전에 이야기한 것인데다 종교인이 그 안에 들어가서 뭘 어떻게 한다고 우리를 제지하는지 이해도 가지 않고 적잖이 불쾌했지만 참았다.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거듭 일행 중에 기자가 있느냐고 수차례 묻고 확인했다. 백번양보해서 수납노동자들이 도로공사 본사를 불법 점거한 점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국회의원 정도 인사가 아니면 그곳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그곳을 차단하고, 기자와 종교인을 포함한 그 어떤 사람도 그곳을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무엇이 두려워 공권력까지 동원해 언론과 종교인마저 차단을 하는가? 농성장의 전기를 끊는 것도 모자라 그 안의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외부와 차단하면 자연스레 농성자들이 와해될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다. 이장폐천(以掌蔽天)의 어리석음이다.
▢ “인간이 귀하다!”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를 공약했고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도 사람이 노동보다 귀하다는 인간 존중을 지향한다(간추린 사회교리 272항). 2013년 9월 22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 사르데냐를 방문하신 후 그곳 사람들에게 돈이라는 우상을 둔 경제 체제를 선택한 오늘날 세상에는 윤리가 사라지고 있고 돈이 명령을 내리고 재물이 지배한다고 개탄하셨다. 그리고 돈과 자본의 자리에 사람이 있어야함을 희망의 메시지로 선물하셨다. 자회사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금번 톨게이트 사건은 분명 하나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사람존중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물신에 종속된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금번 사태가 해결되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비록 힘겨운 과정이지만 이 사태를 통해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향한 의미 있는 걸음이 이루어지길 고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