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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정의 문헌] 삶의 깊이
    • 등록일 2022-06-17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79
  •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삶의 깊이

       비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사목 현장에서 밝혔듯이, 예수님께서는 “심판하시기보다는 구원하시고 섬김을 받으시기보다는 섬기러 오셨습니다.” 따라서 지금도 여전히 시야를 넓혀 인간의 자유를 증진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기술과 금융을 제한하고 그 방향을 제시하며, 더욱 건전하고 인간적이며 사회적이고 온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지배적인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으로 제약받는 해방이라고 할지라도, 사실 많은 경우 충분히 다양한 해방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규모 생산 공동체가 오염을 줄이는 생산 체계를 채택하면서 소비가 아닌 생명과 행복과 함께 사는 삶의 모델을 지지하는 경우, 또는 바로 그 기술이 사람들의 구체적 문제 해결을 우선적으로 지향하면서 그들이 더욱 품위 있고 덜 고통받으며 살아가도록 돕는 데에 헌신하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사고와 행동의 새로운 종합을 요청하는 참된 인본주의는 닫힌 문틈 사이로 스며들어 오는 안개처럼 알게 모르게 기술 문명의 한가운데 자리 잡는 듯합니다. 참된 인본주의는 참 다운 것의 굳센 저항처럼 드러납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된 삶의 복잡함과 전 세계적인 성격을 띠는 문제들에 놀라,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 행복의 도래를 더 이상 믿지 않는 듯합니다. 정치와 경제의 현 상황 그리고 그 기술력에서 출발하여 덜 힘든 내일을 맹목적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인류와 역사의 발전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인간적이며 더 나은 미래로 가는 또 다른 길은 없는지 자문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동시에, 이 소수의 사람들은 기술 발명이 모든 이 각자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가능성, 일과 의사소통과 여가를 위한 엄청난 가능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술이 끊임없이 제공하는 새로운 것들에 이미 익숙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비록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공통된 단일한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시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잠시 멈추어 사물의 의미를 회복하고 삶의 깊이를 되찾는 것이, 불가능은 아니지만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복음은 포기하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상황이 나빠진다고 하여 투쟁을 포기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새로운 것에 반응하고 마음을 여는 일은 어렵습니다. 앞이 캄캄한 순간들에 처하면, 자연스레 삶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다른 이들이 얼마나 고마움을 모르는지,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지 홀로 곱씹으며 고뇌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처럼 자기 안에 갇혀 있게 되면, 모든 것이 어둡게 보이고 심지어 슬픔에 익숙해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헤어나기 힘든 이러한 위기에서 우리를 꺼내 주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께 나아갈 때, 우리가 참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당신과 관계를 맺을 때, 당신께 손을 내밀고 눈을 들 어 당신을 바라볼 때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삶의 목적과 의미 그리고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목적과 의미에 관하여 온당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상황을 합리화하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실존적 공허함을 달래고자 정서적으로 더욱 깊이 몰두할 대용품을 우리는 필요로 할 것입니다. 용감한 문화적 혁명이 필요합니다. 현대의 서구 자본주의 체제에 예속된 학문과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사용자들을 설득하고 완전히 세뇌시키며 소비로 이끄는 탁월한 역량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동굴에서 살던 시대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닙니다. 멈추어야만 합니다. 현실을 더욱 객관적이고 영성적이면서 참다운 방식으로 바라보려면, 나아가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마땅합니다. 긍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룩함과 동시에 헛된 방종이 파괴한 가치들과 위대한 목적들을 회복하려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회 정의 – 돈과 권력 p150-153

    미켈레 찬추키 편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전문보기 https://cbck.or.kr/Documents/Read?category=K5280&oid=20190241&gb=title&search=%EB%8F%88%EA%B3%BC%20%EA%B6%8C%EB%A0%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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