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대학생들 “정의 가르치지 않는 연세대 규탄”
“학생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학교”
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백양관 앞에서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청소경비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연대생들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이 노동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2.07.06. ⓒ민중의소리
연세대 학생 3명이 학내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집회 소음으로 학습권이 침해됐다며 노조를 고소하는 일이 벌어지자 더 많은 학생들이 노조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집단행동으로 맞섰다. 이들은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학교”라며 청소·경비 노동자의 ‘원청’인 학교 본부로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연세대 내 여러 단체의 연합으로 구성된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관 앞에서 청소·경비 노동자들, 재학생들과 함께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세대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만큼의 임금인상과 정년퇴직자 인원감축 및 구조조정 반대,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며 지난 4월부터 학내에서 집회를 이어왔다. 학교 측과 교섭이 결렬되면서다.
그러자 연세대 재학생 3명이 ‘집회 소음으로 수업을 들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집회를 주도한 김현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장 등을 업무방해 혐의로 지난 5월 형사 고소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김 분회장 등을 상대로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 정신과 진료비 등 명목으로 약 640만원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도 제기했다.
이를 두고 학교 안팎에선 논란이 커졌다. 공대위는 청소·경비 노동자와 연대하는 학생 3천여 명에게 연·서명을 받았으며, 연세대를 졸업한 변호사들은 노조를 위해 대규모로 공동대리인단을 꾸려 연세대 재학생 3명이 제기한 소송에 직접 대응하기로 했다
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백양관 앞에서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청소경비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연대생들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이 노동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2.07.06. ⓒ민중의소리
다만 이들은 연세대 재학생 3명에 맞서기 위함이 아니라 학교 본부에 책임을 묻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재학생인 해슬 공대위 집행위원장은 “저희는 그 학생들께 어떠한 사감도 가지고 있지 않다”며 “학교가 교육기관으로서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치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학생들도 “오늘 우리는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하고, 학생에게 정의를 가르치지 않는 연세대를 규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러한 문제는 15년도 넘게 이어져 왔다. 학교 운영금액을 낮추겠다는 이유만으로 용역업체와 계약해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이라는 불안한 노동환경에 던져 놓고, 정작 노동자가 생존권이 달린 문제로 학교와 대화하고자 할 때는 하청업체가 해결할 일이라며 손을 떼는 것이 일상이 됐다”며 “그러나 원하청 관계에서 원청이 갖는 절대적 위치를 고려하면 학교당국의 이러한 태도는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고용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유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러한 학교에서 우리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느냐”며 “자유와 진리를 추구한다는 학교에서 헌법 에도 보장돼 있는 노동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왜 매년 같은 문제를 반복하는지, 왜 제대로 된 해결은 하지 않는 것인지 학교에 묻고 싶다”고 따졌다.
이들은 “많은 학생들이 매년 노동자들의 투쟁에 서 들려오는 소음에도 묵묵히 연대했던 이유는 그것이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투쟁이 나와 같은 학교 구성원의 처절한 외침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며 “학교가 학생을 기르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소임을 아직 저버리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노동자와 학생을 제대로 마주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민·형사소송을 당한 당사자인 김현옥 분회장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우리를 고소한 학생들을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그 학생들이 우리를 고소했다고 해서 우리가 목소리를 안 낼 수는 없기 때문에 나온 거다”며 “학교가 하루빨리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 분회장은 “저희가 월급을 300~400만원 받는다고 하던데, 저희 실제 임금은 세전 208만원이고 세후 194만7천원이다. (언론 등을 통해 나온) 저 300만원은 어떻게 계산해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며 “또 퇴직자 자리에 인원이 충원되지 않아서 적은 인력으로 일하느라 일의 강도가 엄청 세졌다. 그래서 인원감축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샤워시설 문제도 계속 남아있다”고 호소했다.
재학생들의 공개적인 연대 발언도 계속 이어졌다.
연세대 경제학과 18학번인 장찬 정의당 연세대학생위원장은 “한쪽에서 학생들이 수업 들을 때 다른 한쪽에서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강도 높은 노동한다면 과연 그게 아름다운 공동체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우리가 (학습권이라는) 권리 행사하기 위해 같은 공동체 구성원과 싸운다면 이 사태의 총책임자인 학교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도 그냥 지나가지 말고 부디 작은 힘이나마 보태 달라”고 호소했다.
연지 연세대 사회과학대학 교지 편집장은 “교정엔 크고 세련된 건물이 들어서고 학교의 사회적 권위는 더욱 견고해졌으며 재단의 자본권력은 더 확장됐다. 그러나 그 안에서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은 놀라울 만큼 변하지 않았다”며 “캠퍼스도, 구성원도, 학교도 바뀌어가는 10여 년동안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은 늘 몇 백 원의 시급 인상과 제대로 된 휴게공간 마련에 머물러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많은 몫을 향한 학교의 쾌속질주와 최소한의 보장조차 받지 못한 청소 노동자의 지난한 투쟁, 이 속도의 차이는 연세대의 빠른 발전이 누구의 제자리 걸음을 담보해왔는지 폭로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우리는 내 일상의 평온이 결국 타인의 손길로 똘똘 뭉쳐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며 연대를 호소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류하경 변호사는 연세대 사회학과 02학번 졸업생이며 학내에 노동조합이 구성될 때 연대 활동을 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지금 와보니 학교는 똑같다. 15년 동안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원청하청 구조 뒤에 숨어 하청업체를 내세우면서 노동자들을 탄압할 게 아니라 연세대 본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의 공동대리인단 구성을 주도하고 있는 류 변호사는 “우리를 고소한 학생 3명 미워하지 않는다. 이 사건을 대리하는 이유가 극소수 학생 3명을 혼내주기 위함이 아니다”며 “이 쟁점의 전선은 노동자와 연세대 사이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 변호사는 학습권은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에 비춰볼 때 소송에서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다면서, 소송을 제기한 학생들과 대화로 원만히 문제를 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