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밀어낸 광장의 절규…“문중원의 죽음 진상규명”
서울시·종로구 “확산 방지” 광화문 추모농성장 천막 철거
유족·시민대책위 “방역 다 협조했는데…정부 원망스럽다”
고 문중원 기수의 부인 오은주씨가 27일 서울시와 종로구의 행정대집행에 농성 중인 세종대로 천막이 철거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한국마사회의 부조리를 유서에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수 문중원씨의 추모 농성장 천막이 27일 강제 철거됐다.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이날 오전 7시부터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 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 천막 1개동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실시했다. 시와 구청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행정대집행이라고 했다. 문씨를 추모하는 시민분향소 천막과 문씨의 시신이 실린 운구차 천막은 철거하지 않고 유족이 숙소로 사용하는 천막만 철거했다.
시민대책위 활동가들은 서로의 몸을 끈으로 연결한 뒤 천막을 둘러싸고 버티다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끌려나갔다. 활동가들은 끌려가면서 천막 안 유족을 가리키며 “안에 사람이 있다”고 외쳤다. 철거는 그대로 진행됐다. 문씨 부인 오은주씨(37)는 남편의 시신이 실린 운구차를 붙잡고 쓰러져 통곡했다. 오씨는 철거 직후 열린 기자회견 도중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문씨 장인 오준식씨(63)는 흩어진 천막 잔해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대한민국 살기 싫다. 진짜 살기 싫다….” 용역업체 직원들은 오전 9시40분쯤 천막을 완전히 부수고 잔해를 옮겼다.
오준식씨는 “정부의 눈에 중원이가 거슬렸느냐. 문재인 대통령이 중원이의 죽음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장례를 치렀을 텐데 정말 원망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문씨 아버지 문군옥씨(71)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사정했는데도 이렇게 끄집어내는 것이 민주주의냐”고 말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행정대집행에 앞서 계고장을 3차례 전달했지만 자진 철거하지 않았다. 서울시와 종로구에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한 상황이고 민원도 많이 들어와 어쩔 수 없이 집행해야 했다”고 말했다.
시민대책위는 성명을 내고 “유족과 대책위는 희망버스 집회를 취소하기도 하며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할 수 있는 모든 협조를 했다. 문재인 정권은 코로나19를 핑계로 한국마사회의 비리 척결을 위해 목숨을 바친 문씨의 염원을 잔인하게 유린했다”고 비판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행정대집행 도중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4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오은주씨를 포함해 시민대책위 관계자 6명이 병원에 이송됐다. 종로구청 관계자 1명도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과 부위원장 7명은 문씨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선거사무실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종로구청은 세종문화회관 인근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의 천막 3동도 철거했다. 이날 행정대집행에는 종로구청 직원 100여명과 용역업체 직원 200여명이 동원됐다. 종로구청은 대집행 비용 4800여만원을 시민대책위와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에 청구할 예정이다.
부산경남경마 기수협회 소속이었던 문씨는 한국마사회의 내부 부조리를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해 11월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과 시민대책위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지난해 12월27일 정부서울청사 앞으로 문씨의 시신을 옮기고 농성을 벌여왔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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