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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호 그의 신발을 신고] 부당해요? 그렇다면 노동조합!
    • 등록일 2020-11-18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73
  • 부당해요? 그렇다면 노동조합!


    오래전 나는 방송국 차량 운전 노동자였다. 취재 차량을 비롯하여 중계차, 특수차량 등을 운전하고 관리하는 일을 했다. 2007년에 입사했고 2017년 초에 퇴사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종종 미디어에 노사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그때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곤 한다.

     

    2012년 겨울이었다. 주말 야간 당직근무 중이었는데 충정도 어딘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알려왔다. 급히 취재 준비를 하고 카메라 기자, 오디오맨, 취재 기자와 함께 차에 올랐다. 고속도로 위를 쉬지 않고 달려 중간쯤 갔을 무렵, 전화가 왔다. “킬!” 킬은 취재 일정 취소를 뜻하는 방송가 용어다. 근처 톨게이트로 빠져나와 차를 돌려 다시 회사로 향해야 했다.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받고 있다가 직진 신호에 따라 출발하는 순간! 차량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미끄러지며 반대편 인도의 옹벽을 들이받았다. 차에 탄 모든 사람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차량은 반파되었다. 노면 살얼음(블랙아이스) 때문이었다. 대비를 전혀 할 수 없는 불가항력 상황. 나는 전치 4주 진단을 받았고 입원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출처 : 자동차이야기

     

    회사에 병가 신청을 냈지만 거부당했다. 남아있는 내 연차를 우선 소진하고 보란다. ‘에?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근무 중에 발생한 사고인데?’ 한술 더 떠 회사는 당시 나의 ‘근무 중 부주의’에 관해서 말했다. 징계에 관한 언급도 했다. 불가항력 사고였는데. 주위를 둘러봤지만, 하소연할 곳이 전혀 없었다. 결국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연차를 전부 소진했고, 근무 일정을 무리하게 조정했다. 그리고 시말서를 제출했다.

     

    분명 이건 잘못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몇몇 직원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고, 술자리에서 우연히 노동조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 자주 만나서 논의했고 결성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다들 처음 가보는 길이고,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책임지고 앞장서는, 소위 말하는 총대가 필요했다. 당시 내가 뭐에 씌었을까? 덥석 내가 한다고, 나만 따라오라고, 나를 믿어 달라고 큰소리쳤다.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이것저것 알아보니 우리 사업장엔 산별노조(기업별 노조와 반대되는 개념. 기업을 막론하고 특정한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소속된 노동조합)가 적합하고, 민주노총 산하의 언론노조로 가입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종로에 위치한 언론노조 사무실에 찾아갔다. 수많은 상담, 회의를 했고, 사측이 알 수 없도록 보안도 극도로 신경 썼다. 마침내 2013년 4월 방송회관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사비정규지부 SBS분회 결성, 제1대 출범식’ 많은 분이 축하해주셨고 이때만 해도 모든 것이 잘 끝날 줄 알았다. 이제 시작인 것을.

     

    출처 : jtbc드라마 송곳

     

    회사의 절대 과반 노동자가 조합에 가입했고, 사측에 정식으로 단체교섭을 통보했다. 조합원들에게 호언장담했다. “나만 믿어 달라. 반드시 처우개선을 쟁취하겠다.”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다. 자만은 금물이었을까. 첫 회의부터 어려움을 느꼈다. 우리를 깔보는 사측의 그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교섭 회차가 계속될수록 사측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결과물이 나오지 않자 점점 조합원들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사측은 이런 걸 노렸으리라. 집행부원과 머리를 싸매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는 방송국 사람이다. 그래, 언론을 이용해보자!’ 사측의 부당한 처우에 맞서는 우리 이야기에 관하여 많은 미디어와 인터뷰하고 기사도 내보냈다.

     

    회사가 조금 움직였다. 단체협약 초안을 서로 작성해 교환했다. 사측이 가져온 초안으로 합의한다면 아마도 난 조합원들에게 맞아 죽으리라 생각되어 반려했다. 사측은 결코 손해를 보려 하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벌써 5개월이 지났다. 큰일이었다. 구체적인 성과는 없었다. 사측은 매번 똑같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여건이 안 된다’는 식이었다. 조합장을 하면서 근로기준법을 참 많이 들여다보았다. 퇴근 후 귀가해서 가족들과 식사하고 담배 한 개비 태우러 나왔다가 무심결에 차에 있는 조합원들 급여 명세표를 보게 되었다. ‘어?’ 전에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 보였다. 번개 맞은 듯 급하게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알아보았다. 회사가 수년간 몇몇 급여 항목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무엇이 대수랴. 언론노조 소속 노무사에게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었다. 내 예상이 맞았다. 다음날 바로 노무사와 만나 정확한 사실을 확인했다. 요약하자면, 회사에서 근로자 급여 총액을 맞추기 위해서 여러 항목으로 분리해 금액을 짜 맞춰 놨는데, 그 중 2개가 법적으로 항목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임금체납을 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였고, 노동부에 신고하겠다고 사측에 통보하니, 회사 대표는 급하게 면담을 요청했다. 대표 입장에서 불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아웃이니 급하긴 급했나 보다. 면담이 이어졌고, 우리는 두 가지를 요청했다. 첫째, 노동조합을 인정하라. 둘째, 항목 상일뿐이지만 그래도 임금체납이니 일정 부분 전 직원에게 나눠서 현금 지급해라.

     

    출처 : 웹툰 송곳

     

    대표는 우리 요구를 수용했다. 그가 눈물을 보였던가. 그해 8월 첫 단체협약 및 임금협상이 완료되었다. 물론 모든 조합원의 찬성이 있었다. 사측으로부터 부당함을 느끼고, 그 부당함을 경험한 다수 노동자가 모여서 조합을 결성하고, 회사와 싸워서 권리를 쟁취하고. 이것이 대다수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처럼 했고 결국엔 승리했다. 간략하게 썼지만, 정말 당시 받은 극도의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생전 없던 역류성 식도염으로 밥도 많이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먹지 않아도 배가 안 고팠다.

     

    날은 오랜만에 밥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식후 연초’도 즐겼다. 한 모금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을 올려 봤다. ‘도와주세요. 다들 저만 보고 있는데 미치겠습니다. 길을 보여 주세요.’ 기도가 절로 나와 웃음이 났다. 하늘을 보느라 뻐근해진 목을 풀려 고개를 움직이다 차 뒷자리에 놓인 친한 동료의 급여 명세표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의 나라면 대충 보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이 녀석 이달 수령액이 적던데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유심히 명세표를 들여다보았다. 나로 하여금 하늘을 보게 하고, 그간 무심했던 동료의 급여 명세표를 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前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사비정규지부 SBS분회장 배지수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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