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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milia 2018-07]2018년 11월 4일 연중 31주간 강론
    • 등록일 2018-11-02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50
  • 2018년 11월 4일 연중 31주간 주일 강론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오늘 복음은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한 율법학자와 예수님의 대화입니다. 그는 어느날 예수님을 찾아와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유대인들에는 모세가 하느님께 받은 십계명 말고도 종교적 삶을 위한 율법이 613조항이나 있었고, 이는 삶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의 질문에 신명기 64-5절을 인용하시며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첫째로 꼽으십니다. 이어 레위기 1918절에 있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간단히 이야기 해서 하느님 사랑, 이웃사랑이라는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모든 것을 함축하십니다. 동양의 가르침 안에서 표현해보면 경천애인즉 하늘을 공경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 닮아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 가르침 안에서 두 번째 계명인 이웃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흔히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고 생각할 때 많은 교우 분들이 거리의 노숙자나 지하철역의 구걸하는 분들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면서 용기가 나지 않아 지나쳤던 때를 후회하기도 하고, 아니면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망설였던 경험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왜 그분은 노숙자가 되었거나 구걸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하나?’ 고민해 보신 분이 있으신지요. 너무 단순하게 개인의 게으름이나 노력 부족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단정지은 것은 아닐까요? 혹은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단 표현처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단념하고 그만둔 것일까요?

     

    제가 만난 많은 가난한 이웃들은 개인적 나약함이나 게으름의 이유로 사회적 약자가 된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한 번 실패하면 회복할 수 없는 사회구조, 혹은 다른 누군가의 탐욕으로 인한 불평등인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법과 제도가 미비해서 가난이 양산되고 확대되며 불평등이 가중되는 사례가 더 많았습니다. 최저임금이 실질적인 최저수준을 보장하지 못하고, 과도한 경쟁에서 낙오되면 되돌릴 수 없고, 노동소득의 증가보다 자본소득의 증가가 훨씬 가파르게 이루어지는 시스템 안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웃사랑의 복음을 접하면 매우 개인적인 차원으로만 생각합니다. 당연히 해결책도 개인적 기부 등 사적인 차원으로만 한계를 정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생각할 때 복지정책을 확대하기 위해 내가 세금을 더 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역할, 사회 제도의 정비 등은 이웃사랑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복음과 신앙도 개인적 차원으로만 가두어 두는 것입니다.

     

    간추리 사회교리 70항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복잡한 생산, 노동, 사업, 금융, 무역, 정치, 법률, 문화, 사회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복음의 해방 말씀이 울려 퍼지도록 사회 상황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교회의 권리이다.”

     

    오늘 예수님은 이웃사랑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하고 응답한 율법학자에게 예수님께서는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하고 이르셨다고 합니다. 이제 그 율법학자에게 실천이 남아 있기에 그렇게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습니다. 이웃사랑을 개인적 차원으로만 생각하고 그러지 못했을 때를 스스로 후회하는 것만이 복음적 성찰이 아니라 우리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우선적 선택으로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일에 관심을 두는 것도 이웃사랑의 소중한 실천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가톨릭 사회교리의 가르침은 그러한 길을 찾은 우리에게 소중한 나침반이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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