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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에세이 2018-02]노량진에서 청년들을 동반하며...
    • 등록일 2018-10-30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58
  • 노량진에서 청년들을 동반하며...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가톨릭노동청년회 동반자 한여림 실비아 수녀

     

    가톨릭노동청년회 본부가 있는 노량진, 그곳에서 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쯤에 가톨릭노동청년회 본부에 "친구네"라는 공간을 열었는데 편안히 쉬거나 책을 읽거나 간식을 먹거나 공부를 하러 청년들이 꾸준히 오고 있지요. 이곳은 그들에게 잠시 위안이 되는 곳입니다.

    지난 3년간 가톨릭노동청년회 동반수녀로 저는 노량진이라는 곳과 노량진에 있는 청년들의 현실에 대해서 새롭게 발견하고 깨달았습니다. 노량진에 있는 이 시대의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아직 여전히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놀람으로 아픔으로, 절망감으로 때로는 도전으로 다가오는 그들의 이야기...

     

     노량진에서 제가 주로 만나는 청년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들어주고 자신의 얘기를 하길 원하는 청년들입니다. 조건 없이 들어주고 맞이하는 것.... 그들을 대하는 첫 번째 자세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고 대학은 나왔으나 그다지 좋은 대학이 아니라서 취업하기가 매우 어려운 데다가 대학졸업 후 이미 학자금 대출 등으로 빚이 있기도 합니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취업을 해 돈을 모아서 자립을 하고 싶은데 청년실업률은 최악이고 취업은 안되고 양질의 일자리는 희박한 현실 속에서 공무원 시험을 최상의 대안으로 선택합니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도 아니고 학벌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어쨌든 자신의 노력으로 시험만 붙으면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직장이기 때문에 그들의 선택은 공무원 시험입니다.

    제가 만난 대다수의 청년들은 한결같이 출발부터 불평등하고 공정하지 못한 한국사회에 큰 분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사회의 빈부의 격차는 매우 심하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자신들의 현실에서 출발부터가 다르며 그 차이가 심화되는 현실에 좌절하고 분노하였습니다.

    노량진에서 한 청년이 농담처럼 다른 친구들에게 한 말을 들었습니다. " ~ 내가 삼성 이건희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 저는 어떻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건지, 그 아이의 부모님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은 그들의 현실, 이것이 이 시대의 청년들이 체감하는 현실인 건가? 소비주의, 자본주의가 팽배한 한국사회에서 성장했고 아직도 살고 있는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굉장히 심각한 것 같습니다.

     

    한 친구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으로 자주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사회에 불만이 많았고 권력을 가져야 다른 이들이 자신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친구였습니다. 촛불집회가 한창이었던 때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이 시대의 청년으로써 사회정의, 인권, 공동선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이야기를 그 친구에게 하였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바라보면서 "수녀님은 참 이상주의자이시네요"라고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자신은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담한 자신의 미래, 삶에 대한 고민으로도 벅차고 죽을 것 같은데 어디에 관심을 두겠느냐며... 수녀님은 내가 느끼는 이 절망감, 절박함을 아냐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는 인생은 매일매일 치러나가야 하는 전쟁터 같다고... 그래서 너무 무섭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이야기 속에서 깊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내가 아직도 이 청년들이 느끼는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고 있구나 라는 성찰과 함께 저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청년실업문제는 분명히 해결해나가야 하고, 정치적, 사회적인 노력과 대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는 노량진에서 청년실업문제가 아주 절박하고 절실한 문제라는 것을 체험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노량진에 몰리는 청년들이 안타까운 어른들은 공무원 시험만이 대안이 아니라며 다른 길이 있다고 그들을 도와주고자 조언을 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섣부른 조언보다는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우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통받고 있는 이들 곁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이 참된 공감이 아닐까요? 참된 공감이 있으면 그들은 스스로가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무엇을 해주는 주체가 아니라 그들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지해주고 묵묵히 버텨주고 함께 동행하는 것!

    예수님께서 교회에게 원하시는 몫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전 노량진에서 그들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귀를 기울이며 묵묵히... 겸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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