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표 도제학교’ 노동인권 침해
ㆍ실습 고교생, 초과근무·저임금에 잡일·청소·개인 심부름까지…
ㆍ학교도 기업도 준비 안된 채 졸속 도입…올 198곳 운영
박근혜 전 대통령의 2014년 스위스 순방 이후 ‘선진국형 직업교육’으로 선전하며 시작한 ‘산학일체형 도제학교’가 학생들의 노동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하반기 관내 도제학교 10곳의 160명을 설문한 결과 학생들의 노동인권 침해 소지가 높다며 노동인권 교육과 컨설팅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26일 밝혔다. 도제학교는 독일·스위스의 중등단계 직업교육 방식인 도제식 교육훈련을 한국식으로 바꾼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2014년 1월 스위스 베른의 상공업직업학교를 방문한 뒤 우수 기술·기능 인력 양성을 통한 고용률 확대를 목표로 2015년 시범사업으로 도입됐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3학년 2학기에 기업체 현장실습을 하지만, 도제학교 학생들은 2학년 1학기부터 학교와 기업체를 오가며 직업훈련을 받는다. 지난달 첫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올해 전국 198개교(서울 26개교)가 운영 중이다.
설문조사 결과 실습교육 내용과 사업체에서 교육훈련의 연관성이 없다는 응답이 43.8%(70명)에 달했다. 학생들은 실제 현장에서 도제교육과 무관한 청소나 잡일, 심지어 풀뽑기를 한 것으로 나왔다. 기업체 직원들이 욕설이나 무시하는 언행을 하고, 근무시간이 아닌데도 불러서 개인 심부름을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은 직원들의 통제·감시를 받고, TV가 없거나 스마트폰 사용이 어려워 휴식과 사적 활동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안전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하다 다칠 수도 있겠다’는 응답이 65.8%나 됐지만, 안전장비로는 목장갑, 작업복 등 단순 작업도구를 지급한 경우가 다수였다. 산재를 경험하거나 함께 일하던 친구가 산재를 겪은 경우도 10.0%에 달했다. 도제학교 학생에 대한 법·제도가 미비해 도제학교 2학년들이 특성화고 3학년 현장실습생보다 더 오랜 시간 근무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특성화고 실습생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을 적용받아 노동시간이 1주 35시간·최대 40시간이었지만, 도제학교 학생은 일반 근로기준법에 따라 1주 40시간·최대 46시간이었다. 도제학교 학생은 방과후 수업으로 부족한 수업을 보충해 학습 부담이 컸으며, 학교 중도 복귀 후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다. 시급은 사업장의 56.3%가 최저임금 수준(6030~6500원)이었다.
학생들은 초반에는 ‘교육을 받으면서 수입이 생긴다’거나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홍보에 끌려 지원했지만, 실망만 커졌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이수정 공인노무사는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국책사업으로 졸속 도입되면서 학교와 학생은 내용을 모른 채 지원하고, 기업은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활용하지 못하는 등 총체적 문제가 얽혀 있었다”면서 “학생들만 저임금 노동자로 희생되는 현장실습의 악화된 버전”이라고 말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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